미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12/11)
*하나님은 다시 모일 이스라엘 백성을 무엇에 비유하십니까? (2:12)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를 다 모으겠다.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 모으겠다. 내가 너희를 우리로 돌아오는 양 떼처럼 모으겠다. 양 떼로 가득찬 초장과도 같이, 너희의 땅이 다시 백성으로 가득 찰 것이다.”
미가는 남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던 선지자로서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사역을 한 인물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명성에 가려 그닥 유명세는 타지 못했으나, 미가역시 이사야에 버금갈 정도로 대쪽같이 심판의 예언을 거침없이 쏟아 부은 선지자였다.
미가는 남유다가 심판을 받게되는 이유를 ‘방치’ 에 두었다. 죄악이 북 이스라엘 사마리아로부터 흘러 들어오고 있는데도 그것을 막지 못하고 방치했다는 것이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둔갑시켜 백성들을 미혹한 최초의 도시였다.
금송아지 열풍이 전국을 뒤덮고 거짓선지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백성들을 올가미로 낚아채어 북이스라엘 전체를 죄악가운데 빠뜨린때에 곰팡이가 퍼지듯 슬며시 우상숭배가 남유다땅으로 유입이 되었는데도 선지자, 예언자, 백성들 할것없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은 말이 있었으니 ‘우리는 괜찮을 거야’ 라는 말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망신시키실 리가 없다.’ 는 말로 백성들을 더 어두운 배역의 길로 인도해 버렸다.
세속의 물결이 신자와 교회안에도 흘러 들어오고 있는데도 방치하고 있다. 멈추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막아서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은 흘러들어온것이 중심이 되어가고 있을 지경이다.
교회는 대기업을 방불케 하고 있고, 목회자는 건물의 주인노릇을 하며, 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마치 대기업에 입사한 직원처럼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화려하게 지은 아방궁의 문지방을 드나들고 있다.
‘여기는 안전할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니니 여기야 말로 하나님이 지키시는 곳일거야’ 라는 착각속에 살아가는듯 하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착각속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길에 있는 돌들로도 내 백성을 삼을수 있다.’ 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것을 볼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외면하는것에 눈길이 가고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일인냥 시도하고 자랑한다면, 과연 그런자들을 하나님이 지켜주실까? 마지막날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한 자리에 모으고 양과 염소로 분리하실것이다. 그때에도 아마 나는 안전할거야, 라며 자신들의 행한 일들이 옳은 것이었다고 장담할지 모른다. 교회와 신자들은 헛된 꿈에서 깨어야 한다. 그리고 목자이신 그리스도가 부르시는 음성을 따라가는 자만이 양이다.
(12/12)
*본문에서 만군의 주께서 약속해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4:4)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3,4장은 ‘멸망하겠지만, 다시 강하게 하리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있다. 회개가 없는 이스라엘위에 하나님은 반드시 멸망의 심판을 내리신다. 그들을 향한 미가 선지자의 선포는 지도자, 백성들을 가리지 않고 쏟아 진다.
“예언자라는 자들이 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전쟁이 다가온다고 협박한다.”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서야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삯을 받고서야 율법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서야 계시를 밝힌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큰소리를 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가가 밝힌 그 시대의 죄가 어쩌면 이시대에 심히 극대화되고 체계화되어 있다는것을 보면서 소름이 돋는다. 이와같은 삶을 영위하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실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된 자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통해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잘 구별하고 믿음의 삶을 지켜나갈때 어려운 시간들은 지나고 교회가 승리하는 시간이 찾아 오게 될 것이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 안에 거하여 마지막 승리를 맞이하길 소망합니다.
(12/13)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6: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으신것은 그들의 믿음생활이 진실하지 못한것에 대하여다. 그들은 제물을 드리는 의식 행위를 함으로 진정한 제사를 드리는것으로 여긴 것이다. 아무리 합법적인 제물(일년 된 송아지), 많은 제물( 천천의 숫양, 강물같은 기름), 귀한제물(자녀를 헌신케함) 을 하나님께 드려도 이것만으로는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행위가 되지 않는다.
물론 예배를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예물을 드리고 봉사, 헌신 모두 귀한 일인것은 틀림없지만, 이와같은 행위들이 진실해야 하지 못하면 가인의 제물로 전락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전부였던 두렙돈을 드린것이 부자가 드린 많은 제물보다 더 많고 소중하다고 여기셨다.
왜냐하면 가난한 과부의 마음이 부자보다 진실했기 때문이다. 어떤 예배, 예물,봉사, 헌신이 진실한것일까? 모든 예배행위전에 하나님과 늘 교통하고 동행하는 삶이 있는자가 드리는것을 하나님께서 진실로 받아 주신다. 가인과 아벨, 가난한 과부와 부자의 격차가 거기서 벌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세상에 있는것을 얼마나 드려야지 만족하시겠는가? 양이 아니다. 마음과 정성이다. 진지한 신앙은 그렇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예배에 뜨거움과 은혜가 부족한가? 예배이전의 시간들을 하나님과 나누길 시작하라 그리고 자신의 예배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경험하라!
(12/14)
*본문에서 기자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 고백합니까? (7:18-19)
“주님 같으신 하나님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살아 남은 주님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진노하시되, 그 노여움을 언제까지나 품고 계시지는 않고, 기꺼이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의 발로 밟아서, 저 바다 밑 깊은 곳으로 던지십니다. “
예언서의 시작은 항상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등장하지만 끝은 모두 소망으로 장식되는것을 본다. 소망이 없는 심판예언은 인생을 절망으로 이끄지만 회복을 약속하는 예언은 인생을 회개하게 만든다. 시편기자는 끊임없이 여호와의 선하심을 노래하고 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신실하심이 영원하며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우리 하나님은 선이시며,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악을 미워하시지만 악한 자가 회개하길 간절히 기다리시며, 죄를 심판하시지만 죄인들이 돌이킬때는 언제나 회복과 풍요를 예비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회개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자를 변호하시고 그를 당신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이 선하게 행하신 의로운 일들을 보게 하실 것이다.
신자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어려운 세상 가운데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말고 오히려 신앙으로 버티고 인내해야 한다. 마침내 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심의 사실을 보게 되며 그 날에 신앙을 끝까지 지켜 남은자를 부러워할 것이며,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될것이다.
오늘도 우리를 경건한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두 팔벌려 기다리는 의로운 삶을 살아 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