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남유다땅, 드고아의 목자가 부름을 받고 북 이스라엘로 올라가 말씀을 선포한 사람)
(12/03)
*하나님이 심판을 선언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4)
“그들이 주의 율법을 업신여기며, 내가 정한 율례를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조상이 섬긴 거짓 신들에게 홀려서, 그릇된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부름을 받고 북 이스라엘로 올라온 시기는 북 이스라엘의 부강을 이끌었던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였다. 나라는 엄청나게 강해졌고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다 누리며 살았던 때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데에는 메말랐고 영적으로는 우상숭배로 인하여 타락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예언자가 나오게 하시고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나실인(하나님께 바쳐진자)이 나오도록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먹이고, 예언자에게는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요즘식으로 바꾸면, 목사들의 설교를 들으려 하지 않았고, 소명받아 목사, 선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런 삶대신 세상의 삶이 더 유익한것이라 가르쳐 소명을 끊어버리도록 했던 것이다.
이와같은 죄악이 발생된 배경에는 부유한 삶이 있었다. ‘굳이 하나님 말씀듣지 않아도 잘먹고 잘사는데 뭐,,, 젊은사람들에게는 고생길(?)이 뻔히 보이는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는데 뭐,,,’
이같은 세상의 부유함이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떨어지도록 만들었고, 말씀은 업신여김을 당했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에게 물질을 주고 풍요를 빌어주는 거짓 신들을 섬겼고 자녀들에게도 그들의 타락한 삶을 살아가도록 미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시대에도 예외는 아닌거 같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업신여김을 당하고 교회는 세상에서 점점 외면을 당하고 있다. 물론 교회와 신자들의 부도덕한 면도 있겠지만 세상은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는것보다 세상의 것을 얻고 누리는 삶을 더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모습이 발생할때 여지없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는것을 성경은 지겹도록 알려주고 있다.
넓고 편한길을 찾는자들이 다시 말씀을 기억하며 좁은길, 좁은문으로 되돌아가라고 하신다. 내가 가고 있는 삶은 어느쪽일지 말씀에 자신을 비춰볼수 있기만을 기대해 봅니다.
(12/4)
*예언자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3:6-8)
“성읍 안에서 비상나팔이 울리는데,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어느 성읍에 재앙이 덮치면, 그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겠느냐? 참으로 주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그 종 예언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신다. 사자가 으르렁거리는데, 누가 겁내지 않겠느냐? 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예언자의 소명을 다 해야 할것을 명령하셨다. 아모스는 남유다 사람이었으나 북 이스라엘에 말씀을 예언하는 자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당시 호세아 선지자를 제외하고는 북 이스라엘에서 예언을 제대로 전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은 마치 바산의 암소들처럼 사람들위에 군림하여 그들의 물질을 빼앗고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살았다. 거짓예언이나 하면서 사람들을 오히려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게 했고 율법의 형식만 취할뿐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났던 자들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외면하며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에 바빴던 예언자들과 달리 아모스는 자기의 예언이 하나님의 명령이며 말씀이란것을 강력히 전파하였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전하고 증거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무화과 나무를 재배하던 목자출신이었으나, 하나님은 다급히 그에게 사명을 주셨고, 멀리 북이스라엘로 보내셔서 죄악가운데 있던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전하도록 하셨다. 이시대에도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기 바쁜거 같다. 전하는 자가 없다면 백성은 무지하고 결국 무지로 인하여 범죄하며 살수 밖에 없게 된다.
지금은 이미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완전히 성서로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아모스와 같이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너희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의 명령을 세상을 향하여 외치고, 주님의 경고의 메세지를 말씀으로 전하고 증거할수 있어야 한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올수 있도록 하는자가 복된 신자이다. 전하는 사명은 믿는 사람 누구에게나 주신 의무임을 기억하며, 전하는데 게으르지 않는 청지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2/05)
*이스라엘 백성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5:6)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그러면 산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요셉의 집에 불같이 달려드시어 베델을 살라버리실 것이니, 그 때에는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
북 이스라엘의 운명은 오직 하나님손에 달려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기는 커녕,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바빴고 우상과 물질을 찾아 헤매는데 온통 집중하였다.
분노가 극에 달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진실을 발설해 버리셨는데…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제물을 바친다 해도 받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도 집어 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듣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이라고 하나님앞에 나와서 행했던 모든 의식과 행위들이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마음은 없으면서 책임때문에 하고, 체면때문에 하고, 그냥 버릇처럼 한것 뿐이지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아모스의 예언중에 가장 핵심적인 구절을 선포하도록 하셨는데,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
공의, 정의 모두 거짓없이 올바르다는 의미인데, 흐르게 하라는것은 두가지 의미로서 더러운 것들이 다 쓸려 내려간다는것과, 메마르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거짓으로 드리는 예배를 증오하신다. 오히려 드리지 않는것보다도 못한 결과를 얻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한번을 드려도 진심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를 통해 은혜가 강물같이 흐르도록 하신다. 우리의 예배나 삶에 기생하는 거짓과 부정이 하나님의 공의를 통해 다 씻겨 새롭게 되길 소망합니다.
(12/6)
*아모스가 예언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7:14)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오. 나는 집짐승을 먹이며, 돌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를 모함하여 나라에서 쫒아내려했을때 아모스는 겸손하게 자신이 그런 삶을 살게된 이유를 소상히 밝혔다. 아마샤는 아모스가 백성들을 치는 설교를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만 아모스는 더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아모스 7,8장은 여러가지 환상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그중에 다림줄 환상은 아모스에서 대표적인 주제와 같은 환상이기도 하다. 다림줄(Plumb line)은 건물이 똑바로 세워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도구인데 하나님은 이 다림줄로 그의 백성들의 상태를 재어보신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라는 건물은 도저히 바로 세워질수 없을 정도로 기초와 어긋나게 건물이 지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 한가지 예로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보여 주셨는데, 나라에 가뭄이 들어 모두 살기 힘든 판국에 장사하는 사람들의 대화수준이 이렇다. ‘되는 줄이고, 추는 늘이면서, 가짜 저울로 속이자. 헐갋에 가난한 사람들을 사고 신 한 켤에 값으로 빈궁한 사람들을 사자, 찌꺼기 밀까지도 팔아먹자.’
하나님은 이와같은 그들의 거짓된 양심을 절대로 잊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신자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가운데 남의 눈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모습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잊지 않으시고 댓가를 치르게 하실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다림줄을 우리의 삶을 재어보고 계실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림줄 삼아 매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재어보는 시간을 얻을수 있을때 회개와 더불어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될것이다.
(12/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에 대해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9:15)
“내가 이 백성을 그들이 살아갈 땅에 심어서, 내가 그들에게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뿌리가 뽑히지 않게 하겠다.’ 주 너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범죄한 백성에게 무서운 재앙을 내리시면서 그들의 죄를 심판하신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의 심판을 당할때 그곳에 피할곳은 아무데도 없었던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길이 없다.
그러나, 노아시대의 홍수심판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때에도 그 심판을 면한 사람들은 있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들은 그 무서운 심판가운데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아모스 선지자에게도 이스라엘을 멸하겠다고 예언하셨지만 모두 다 멸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신것을 볼 수있다. 그것은 믿는자들에게 큰 소망이다.
세상이 큰 죄악에 빠져있어도 그 죄와 타협하지 않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자는 구사일생하는 은혜를 얻을 수가 있다. 하나님은 그 남은자들을 통하여 다시 재건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사역을 이행하시는데 결국 회복의 열매가 이전보다 더 크고 충만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시는 뿌리가 뽑히지 않게 하겠다’ 는 예언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를 통해 주시는 복음을 상징하고 있는데 아무리 세상이 더욱 악해지고 거짓선지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 복음을 가로 막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성서가 완성된 작금의 시대에 더이상 예언이나 계시는 없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지만 완전한 파멸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심판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는 회복하시는 은혜가 임하게 된다.
곧 그 은혜가 완전히 닫혀지는 그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여전히 은혜의 시대이며 구원의 문도 활짝 열려있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안에 살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것이 신자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