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무엇을 명령하십니까? (1:2)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독자들로 하여금 가장 애처로운 마음을 들게하는 사람이 호세아 선지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는 호세아의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상징적인 비유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났을 정도다.
그러나, 호세아에게 내린 하나님의 명령은 실화이고 그 말도 안되는 명령을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가 순종하면서 호세아서가 시작이 된다. 경건한 선지자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명령, 즉 음란한 여인을 찾아가 그와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라는 것인데 우리가 호세아라면 과연 그 명령을 실행하고 순종할수 있을까? 선지자의 체면, 사람들의 시선, 영적지도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등을 고려해 볼때 순종은 정말 어불성설이지 싶다.
그래서 적지 않은 독자들은 그런 명령을 내리신 하나님을 무정하다고 보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믿고있는 사랑의 하나님이 왜 그와같은 사명을 주셨을까를 심도깊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 호세아 성경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큰 사랑을 체험하고서도 하나님을 손쉽게 떠나버리고 외면하는 삶이 영적인 음란임을 가르쳐 주시고 그와 같은 음란한 자신의 백성들을 잊지 못하여 끌어 안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호세아가 음란한 아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어 주셨다.
문자에만 얽매이다보면 성경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 지나치게 세상적, 인간적이되지만, 상징하는 의미와 뜻을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드러나는 모습이 바로 ‘나’ 임을 밝혀주지 싶다.
(11/2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깨닫길 원하십니까? (6:6)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이 구절은 호세아 전체의 핵심 주제와도 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은 열심히 우상을 섬기며 범죄하면서도 뻔뻔하게 회개하지 않고 성전에 나와 소를 잡고 양을 잡아 거룩한척 제사드리는 백성들을 보면서 노여워하셨다. 마치 그들이 하나님을 소나 양만 바치면 좋아하는 세상의 잡신처럼 여기는 것에 분노를 터트리시고 그들이 진정으로 드릴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세상의 물질만을 원하신다면, 모세의 말처럼 이세상의 모든 소를 잡고 양을 잡아도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수 있겠는가? 그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마음을 물질로는 절대로 얻을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얻은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수 있었던 방법은 한가지로서 오직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가 있으며 기쁘게 해 드릴수가 있는 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애’ 인데 이 단어안에는 두가지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것과 이웃을 사랑하는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범사를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교만이며 거짓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번제보다도 당신을 알아가는 것을 더 원한다고 하신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매사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하도록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는것이 경건한 삶이라고 본다. 거짓없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며 사랑하여 그 사랑으로 이웃도 섬겨나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1/28)
*에브라임이 속죄를 위해 쌓은 제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8:11)
“에브라임이 죄를 용서받으려고 제단을 만들면 만들수록, 늘어난 제단에서 더욱 더 죄가 늘어난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으려고 제단을 만들면 만들수록 왜 죄는 더 늘어나게 된것일까? 하나님이 이상하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것을 믿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있는것은 아닐까? 원인은 역시 그들에게 있었다.
첫째, 하나님께 드려질 제사의 제단은 한곳(예루살렘) 에서만 가능했는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곳에 마음대로 제단을 쌓으며 역으로 하나님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가지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감은 없는데 제단을 수백번 쌓아봤자 아무 소용없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예배를 드림으로 더 죄를 짓는 다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모습인가!
둘째, 그들의 제사는 가인의 제사처럼 하나님을 위한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짐승을 잡았던 것이다.
“희생제물을 좋아하여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지만, 그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것은 먹는 고기일 뿐이다.그러니 나 주가 어찌 그들과 더불어 기뻐하겠느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율법을 주었으나 그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이상한 것으로 여길뿐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짐승을 잡은들, 제사를 드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신것은 잊어버렸지만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서 짓는 건물에는 온 심혈을 기울였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것이 신자들의 유익이며 축복이며 은혜의 통로가 된다.
한번의 예배도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함을 드릴수 있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우리의 매일의 삶을 더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 지은죄는 낱낱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한번의 제사로 가인과 아벨의 운명이 나누어진것을 기억하자. 가인은 살아도 죽은것이 되었고, 아벨은 죽어도 영원히 산 자가 되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우리는 사신 하나님께 살아있는 예배를 올바로 드려서 하나님께 열납된 예배자로 이 땅 가운데 서기를 소망합니다.
(11/29)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12:5-6)
“주님은 만군의 하나님이다. 주님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분의 이름이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기억에 담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지구상에 살고있는 70억인구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 몇%나 되겠는가? 나 자신이 그 안에 속해 있다는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 가운데 더 귀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 하나님을 기억할때마다 말씀을 같이 순종하는 사람일 것이다. 결국 아버지를 기억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가 하신 말이 생각나서 포도밭에 나가 일했던 아들과 같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북이스라엘(에브라임)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했으나 그 많은 은혜와 사랑은 기억하지 못했고 결국 그들의 발걸음은 순종의 길이 아닌 배교의 길로 나아가 버렸다. 은혜와 사랑을 너무 당연시 여겼던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도 그렇다면 속히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과 순종을 당연히 받으셔야 할 분이시지 우리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주실때마다 감격하며 받고 잊지않고 감사할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나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 뜻도 함께 기억하여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11/30)
*회복된 후 에브라임의 우상에 대한 태도는 어떠합니까? (14:8)
“에브라임이 고백할 것이다. ‘나는 이제 우상들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응답할 것이다. ‘내가 너를 지켜 주마. 나는 무성한 잣나무와 같으니, 너는 필요한 생명의 열매를 나에게서 언제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의 마지막 예언은 축복의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선지자를 통해 듣고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반역하는 병을 고쳐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시겠다고 하신다.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릴 것이니…”
이슬은 비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마른것을 적셔 비옥하게 한다는 의미는 같다. 이슬은 새벽에 하늘로부터 조용히 내려와 메마른 대지와 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그들에게는 생명의 양식과도 같은 존재이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생명의 열매를 맺을수 있도록
영적인 수분이 되어 주시겠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삶을 사는 백성들은 이슬처럼 사라지게 하시지만, 하나님을 찾고 그의 긍휼을 갈망하는 자에게는 이슬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