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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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유다에게 무엇을 명령하십니까? (1:15)
“보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 평화를 알리는 사람이 산을 넘어서 달려온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아라. 악한 자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다시는 너를 치러 오지 못한다.”
엘고스(정확한 지리는 불분명함) 사람 나훔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했다. 그 당시 앗수르(BC 7)는 지금 미국을 훨씬 능가하는 초강대국이었다. 세상의 모든것이 이 나라를 거치지 않고는 길이 없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떨치던 나라였으며, 니느웨는 바로 이 나라의 수도였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니느웨성은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요새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어떤 적들도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정도로 기막힌 성이었다. 그러니 이 백성들의 교만과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을 파괴할 수 없다고 믿을 정도였으니 다른 말이 뭣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은 콧대높은 니느웨성을 간단하게 파멸시키셨는데, 비와 홍수로 그 천연요새를 물에 잠기게 해버리셨다. 그리고 더이상의 강대국이 없을것 같았지만 신흥강국 바벨론을 일으켜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셨다. 니느웨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전에 읽었던 요나서도 생생히 기억할것이다.
약 100년전에 요나 선지자가 천신만고끝에 도착해 회개를 선포했던 그 성, 니느웨를 기억하는가?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은 죄악의 도시, 니느웨.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고, 요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들로 하여금 이 땅은 다시 패역하고 하나님께 받았던 은총은 깡그리 잊은지 오래였다.
주님은 은혜가 끝이 없으시지만, 절대로 죄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시지는 않으신다. 앗수르가 아무리 강하고 그들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려해보지만 그들의 힘이라는것은 하나님 앞에 그저 성냥개비하나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만을 끝까지 믿고 의지하는 백성을 세상속에서도 남겨주시고 인내하도록 힘을 주신다.
공중 권세잡은 사탄이 득실대어도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 소속인 백성을 멸할수 없다. 우리의 육체는 건들지라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는 영혼을 절대로 굴복시킬수 없는 마귀와 세상을 두려워하지말고 오늘도 오직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거하는 신자가 되어 당당하게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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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느웨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3:19)
“네 상처는 고칠 길이 없고, 네 부상은 치명적이다. 네 소식을 듣는 이들마다, 네가 망한 것을 보고 기뻐서 손뼉을 친다. 너의 계속되는 학대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나훔은 니느웨가 결국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그곳이 ‘피의 성’ 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니느웨의 죄악은 피 흘리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부수고 깨뜨리고 빼앗고 약탈하면서 죽이고 파괴하는데 능통했다.
결국 공공의 적이되었고 만인들의 악의 축이었던 니느웨가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칼을 맞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듣는 사람들마다 기뻐서 춤을 추며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일이 일어났다.
당연히 니느웨를 통해 고통과 억압을 받았던 사람들의 반응일것이다.
니느웨의 멸망을 바라보며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주위에도 나의 불행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은 ‘너희가 모든이와 더불어 화평하라’ 는 말씀을 주셨다. 신자된 사람은 원수를 만들지 말고 할수 있거든 모든이와 평화스런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하신다.
다윗은 비록 원수들은 많았지만 그들 가운데는 다윗의 인품과 신앙을 통해 감동을 받은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시므이라는 사람은 사울왕의 측근이어서 다윗에게 그렇게 저주를 퍼부었고 침을 뱉는 몰상식한 행동을 했지만, 다윗이 아무런 보복도 하지 않자, 결국에는 스스로 다윗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수 만들지 않는 비법이다.
원수 만드는 일은 간단하다. 나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면되고, 속이는 자에게 같이 속여주면된다.
그러나 평화를 맺는 삶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거 같다. 인내해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홉번까지 인내했다면 마지막 열번째도 참고 인내하며 선을 보여야 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본을 보여 주셨지 않은가?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내 마음이 기뻐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도 원수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 원수의 영혼을 긍휼히 여길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원수갚는 일이 주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