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
*임의 사랑은 무엇보다 더 달콤하다고 표현합니까? (1:2)
-포도주보다 더 달콤하다. 아가서를 처음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좀 당황스러운 단어들과 묘사들로 인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할수도 있다. 신약을 믿지않는 유대인들은 아가서를 어른들에게만 한정해서 읽도록 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이 성서를 부부 지침서로만 간주했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그가 끔찍히 사랑했던 술람미 여인과의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를 수록하고 있다.
신약성도들인 우리는 부부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가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할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교회(성도)를 신부로 표현하고 있는 바울처럼
아가서를 읽는 독자들이 그리스도가 신부인 교회와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솔로몬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 딸들(외모와 배경이 화려한) 의 놀림과 조롱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던 이유는 솔로몬의 사랑이 그녀의 약점을 커버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피조물이 바로 인간이며 택함받은 성도들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리스도를 나의 친구로 대하는것이 성도의 레벨이다. 이 정도면 세상 어디에 거해도, 누구앞에 서더라도 어깨를 펴고 자신감이 충천할만 하지 않은가!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2:1-2)
이 구절은 너무나 정확하게 솔로몬이 샤론의 꽃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성도들을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이라고 부르신다. 가시같은 험한 세상에서 성도들이 빛나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을 가장 이쁘고 아름답게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아가서를 읽으며 주님과의 사랑이 깊어지며 그 받은 사랑으로 인하여 부부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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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가씨들은 솔로몬이 결혼하는 날, 무엇을 쓴다고 말합니까? (3:10-11)
-어머니가 씌워 준 면류관을 쓴다. 이 노래는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의 딸들의 시선을 솔로몬에게로 돌리게 하는 부분이다. 사랑하는 솔로몬에게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게 한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주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솔로몬이 쓴 면류관은 영광중에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살아가야 한다.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4:12)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부른 노래이다. 동산, 우물, 샘은 같은 뜻으로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신에게만 마음을 주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하였다. 이 표현또한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삶이라고 본다.
동산, 우물, 샘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도록 하는데 잠그고, 덮고, 봉했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자신의 삶 가운데 그리고 기억속에 잘 간직해야 함을 나타낸다.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그 은혜가 늘 인생 가운데 흘러 목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은혜에 늘 만족하며 감사하는 자에게 주님은 솔로몬과 같이 칭찬하시며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만을 사모하며 갈망하여 세상의 영광이 아닌 오직 주의 영광만을 간직하며 온 땅에 드러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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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사랑하는 임의 볼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6:7)
-반으로 쪼개어 놓은 석류 같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대화를 통해 술람미 여인의 성숙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3)
서로에게 속한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당신의 소유고 당신은 나의 소유이다. 이말의 의미는 서로가 각자가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내맘을 당신이 알아주길 원하고 당신의 마음을 내가 알아주는것이다. 부부관계에 이것보다 더 좋은방법이 없다. 서로를 알아주는것.
이것이 되는 부부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끄떡없다. 이것이 안되니까 여기서 무슨말 들으면 싸우고 저기서 무슨말 들으면 다투게 되는거 같다. 성도가 이 땅에서 말씀대로 살다보면 사람들이 좋아할수도 있고 싫어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도가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세상 사람들이 툭하며 던지는 몇 마디의 말이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소유된자는 소유주이신 그리스도의 말씀만 신경쓰면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세상에서 무시당하는가? 소유주의 말을 듣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말만 듣고 다니니까 무시당하는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따르며 살아간다면 처음엔 무시를 당할지 모르나 결국그 사람은 오히려 인정받게될것이다.
술람미 여인도 처음에는 무시를 당했으나 이제는 그들이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이유는 솔로몬이 술람미를 인정해주고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시고 자녀로 인정해 주심을 믿는다면, 분명히 사람들에게서도 인정받게 될것이다.
(7/31)
*솔로몬은 사랑이 무엇처럼 강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8:6)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사랑은 죽음처럼 막기 어렵다는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사랑을 못해서, 안해서 그렇지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 이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솔로몬이 술람이 여인을 사랑함이 이와 같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몸이신 교회와 지체인 성도를 사랑하는 것도 이와 같다.
그리스도는 이미 자신의 생명을 주시며 그 사랑을 입증해 주셨다. 이제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계신다. 사랑은 부부관계나 성도들의 관계속에서 중요한 한가지를 요구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것보다 더 중한 것은 만난 사람과 어떻게 사랑하는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을 만났어도 헤어지고 싸우는 관계를 수도없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서로에게 잘 맞지 않을거 같은 만남인데도 오히려 깊이 사랑하게 되는것을 볼때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 지혜로와야 한다. 사랑을 잃지 않도록 사랑이 변하지 않도록 파숫군이 되어 깨어 있어야 한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요구하는 말을 들어보시면 그녀가 어떻게 사랑을 영원히 지키려고 했는지 분명히 알수가 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8:6)
이 말씀은 한사람의 재산이나 권리를 보증할수 있는 도장을 몸에 꼭 지니고 다니듯이 자신을 항상 솔로몬의 가까운 곳에 함께 있게하며 무엇보다 귀한 존재로 여겨줄것을 요청하였다. 이렇게 요청한 술람미 여인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가 솔로몬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요구할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사랑의 힘을 믿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면 할수록 어떤 요구에도 설득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그토록 간절히 사랑한다면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외면하실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손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셨을만큼 우리를 사랑하심을 증명하셨다. 그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다면 더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변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