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다니엘서의 시작은 그가 선택된 많은 소년들과 무엇이 달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선택받은 소년들에게는 왕이 내린 왕의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다니엘은 그 음식을 보고나서 한가지 결심을 한다.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 고 마음을 정했다.
아마도 왕이 내린 음식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했을텐데 다니엘이 거부한 이유는 그 음식들은 일찍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어선 안되는 금지 음식들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라가 부패하고 우상숭배로 멸망했는데도 여전히 성결한음식, 불결한 음식을 구별하여 먹는 소년이 바로 다니엘이었다는것이 놀랍다.
그는 왕의 주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는데, 그 말도 안되는 간청을 환관장이 받아준것이 기적이 아닌가? 성경은 ‘하나님이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얻도록 해주셨다’ 고 말한다. 그러나, 왕을 두려워했던 환관장을 위해 다니엘은 베짱있게 자신들을 먼저 테스트해줄것을 요구했다.
영양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10일동안 산해진미를 먹은 소년들과 채소만 먹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얼굴을 비교했는데 다니엘과 친구들의 얼굴이 훨씬 빛이 났던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10일이 지났지만 환관장은 다니엘과 친구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데로 음식을 먹도록 허락해 준것이다. 이 모습은 다니엘의 믿음을 통해 환관장이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어리지만 베짱있는 믿음을 보인 다니엘에게 그나라 지식인들의 10배가 넘는 지혜를 부어주셨고, 왕의 까다로운 꿈을 해석하여 곧바로 왕의 신임을 얻게하셨다. 소탐대실이란 말이 있다. 작은것을 탐하다가 큰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믿음에도 소탐대실하는 사람이 있다. 먹는것쯤이야 하면서 슬쩍 믿음을 내려놓다가 결국 크신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게 되는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것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달라지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지 믿음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그 믿음을 지키도록 힘과 도움까지 허락하심을 기억하자.
(11/19)
*느부갓네살 왕과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화덕 속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3:24-25)
“보아라,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다. 모두 결박이 풀린 채로 화덕 안에서 걷고 있고, 그들에게 아무런 상처도 없다. 더욱이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과 같다.”
다니엘 이야기의 두번째 미라클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세 친구가 뜨거운 풀무불안에서도 털끝하나 타지 않고 살아 나온 사건이다. 바벨론 왕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화덕안에서 세 사람이 아닌 네 사람이 같이 있는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이 ‘신의 아들’ 과 같다는 표현을 하였다.
그가 본 사람은 누구일까? 현현하신 예수 그리스도인가? 천사인가? 누구라도 이 상황에서 이상할것이 없다고 본다. 팩트는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고 계시다는 것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엄청난 불시험을 통과한것이다. 이 세청년이 보여준 믿음은 믿음의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신앙이다.
그들은 바벨론 왕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그들이 믿고 섬기는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이 확신한 것은 첫째, 하나님이 자신들을 불속에서라도 구원해 내실것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비록 불속에서 구원해 주시지 않더라도 자신들은 절대로 금신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믿음이다.
그들의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께 귀속되어있는 신앙으로서 이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 믿음안에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불사하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 누구나 불과같은 시험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실것만을 믿지,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과연 얼마나 믿을수가 있는가?
그런데 진짜 믿음은 후자이다. 하나님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던진 이들의 믿음에 감동하셨다.
그리고 바벨론 왕 앞에서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똑똑히 보여 주신 것이다. 흔히 ‘그리 아니하실찌라도의 믿음’이라고 부르는 이 믿음이 점점 사라져가는것 같다. 하나님이 자기의 뜻대로 하시지 않으면 신뢰하지 않는거 같다.
이와같은 모습은 신앙이 아니며 신성모독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인 인간이 좌지우지 하려는 마음부터가 불신앙이다. 온전한 신앙은 이렇게 불시험앞에서도 물불가리지 않는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겼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의 영혼을 생명싸게에 싸서 가지고 계신다면, 두려워할것이 무엇이랴! 팬데믹 속에서 ‘그리 아니하실찌라도의 믿음’ 이 교회와 성도의 삶속에 회복되기를 기도합시다.
(11/20)
*하나님이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4:26)
“또 그들이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본장은 느부갓네살왕의 두번째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이다. 느부갓네살의 교만으로 인한 무서운 하나님의 징계가 내릴것이며, 일곱때로 기록된 하나님의 시간동안 징계를 받고 또 하나님의 시간에 징계를 거두신다는 해석을 해주었다.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심은 인생이 죄악이요, 징계를 거두시는 때는 인생이 죄인임을 깨달을때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분명히 이루어지는 때가 온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무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 때는 분명히 찾아온다. 예수님의 재림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그날이 도적같이 임할것’ 이라고 예언하셨지 않은가!
다니엘이 참으로 대단해 보이는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할때 듣는 대상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들은대로 전했다는 것이다. 폭군이었던 느부갓네살왕에서도 전혀 거침이 없었던 다니엘의 굳건한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을 인정한 그의 온전한 믿음으로부터 온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때 신자의 삶이 강건해질것이다. 대상이나 상황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거나 하나님의뜻을 주관적으로 바꿔 전한다면, 그 인생은 화를 피하지 못할것이다. 장례식에 가보면 어떤 경우 돌아가신분이 전혀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인데도 유족들앞이라 천국에 계실것이라고 위로를 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그것은 사실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아니다. ‘그렇게 살아도 천국가는구나’ 라며 착각을 줄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는자에게는 무서운 저주가 임할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것도 중요하지만, 믿는 그대로 전하는것은 용기있는 믿음의 행동임이 틀림없다.
(11/21)
*기록된 글자의 뜻은 무엇입니까? (5:24-28)
“메네 메네 데겔, 바르신” 갑자기 손이 나타나 벽에 기록한 이 문장을 다니엘은 이렇게 해석한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계산하셔서, 그것이 끝나게 하셨다는 것이고,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것이고, 바르신은 왕의 나라가 둘로 나뉘어서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느부갓네살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사이 왕의 자리에 앉은 벨사살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겸손했어야 하는데 온갖 더러운 추태를 보이며 왕의 권력을 탐닉하였다. 하나님은 더 볼것도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그의 시간을 서둘러 마무리 하셨다.
벨사살왕이 얼마나 무능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는 볼수가 있는데, 살떨리는 사건을 눈으로 목격하고서도 했던 행동이 다니엘에게 해석 잘했다고 상주는것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지금이 상주고 자신의 권력을 드러낼때인가? 무릎꿇고 하나님께 바짝 엎드려도 살지 죽을지 모르는 판국 아닌가?
하나님이 자신을 저울에 달아 부족함이 드러났다면, 그 부족함을 채울수 있도록 선한 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으로 속히 돌아왔어야 했다.
신자들은 이 사건을 잘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삶도 저울에 달아 보시고 계실것이다. 그리고 비록 손가락을 보내진 않으시지만, 여러가지 방편으로 경고하고 계시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것이 지혜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 나의 삶가운데 교만, 욕심, 불순종의 무게가 많이 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합시다.
(11/22)
*다리우스 왕이 금령을 선포한 후 다니엘은 집으로 돌아가 무엇을 했습니까? (6:10)
“다니엘은 왕이 금령 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가 예루살렘 쪽 창문을 향하여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다니엘을 시기한 정치인들이 그를 없애고 싶은 마음에 왕을 이용해 계략을 꾸몄고 그 계략의 대상은 오직 한사람 다니엘이었다. 반면에 다니엘은 너무나 태연스럽게 왕이 그 법령을 통과시킨것을 알면서도 예전에 하던데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왜 다니엘은 자신이 죽게될것을 알면서도 전혀 피할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첫째, 다니엘은 자신 한사람의 행동이 믿는자들에게 미칠수 있는 영향력이 클것이라는 걸 생각했다. 세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유다백성들이 자신의 배교로 인해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될것인지 알고 있었다. 나한사람쯤이야 하는 생각이 주는 나비효과를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둘째, 다니엘은 그 상황을 피할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러 더 적극적으로 그 자리, 시간을 지켰던거 같다. 왜냐하면, 그가 믿는 하나님이 왕의 법령보다 더 크고 귀한것이었기 때문이다. 왕의 법령을 지키려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내팽겨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실까? 그리고 그동안 철저하게 지켜왔던 자신의 신앙 자존심도 땅에 떨어져 짖밟히는 것이다.
신자는 이렇게 믿음에 대한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교만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믿음의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이 더욱 하나님앞에 겸손해지는 사람이다. 결국 원수들눈에 다니엘의유일한 약점은 신앙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 모습은 다니엘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것이다.
사자굴에 들어가서 살았다는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다. 풀무불에 들어가서 털끝하나 상하지 않은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이 생명과도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믿음이 가장 귀하고 빛났던 것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물불가라지 않는 전천후 신자로 사는것이 가장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의 자존심이 되는 사람일 것이다.
(11/23)
*다니엘에게 환상을 알려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8:16-17)
“가브리엘아, 이 사람에게 그 환상을 알려 주어라. 그러자 그는,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왓는데, 그가 올 때에 나는 무서워서 엎드렸다.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아, 그 환상은 세상 끝에 관한 것임을 알아라.”
하나님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에게 명령하여 에스겔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다. 이 환상은 2장에서 보았던 느부갓네살이 꾸었던 ‘신상’ 꿈과 유사한 것으로서 고대 근동에서 강력한 권세를 가졌던 나라들을 차례로 보여준 것이다.
<사자(바벨론)-곰(메대,페르시아)-표범(그리스)-열개의 뿔을 가진 무섭고 강한 짐승(로마) >
다니엘은 바벨론과 메대때 사람이었으니 그가 본 환상은 시작에 불과했을것이다. 그가 눈으로 볼수 없었던 다음시대의 강력한 나라들이 일어나 마치 먹이사슬의 형식을 취하며 힘을 과시했다.
다니엘이 본 환상은 그대로 역사적으로 일어났으며,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열개의 뿔)이 초강대국으로 전세계를 호령했고 그곳에서 가지처럼 뻗어나온 미국이 현재 과거에 볼수 없었던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문제는 미국도 지금 빠르게 배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신상’ 이 뜨인돌이 나타나 부숴뜨렸던 것처럼, 다니엘이 본 환상의 끝에도 인자가 나타나 그들의 권세를 깨뜨리고 완전히 멸망시킬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바로 그 뜨인돌과 인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이세상의 나라가 아무리 강대하고 무서운 권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도전을 해보지만, 하나님은 하나, 하나 차례로 무너뜨리셨고 결국에는 완전히 부숴뜨릴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역사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 가는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것이다.
다니엘의 환상을 살펴보니 지금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때에 서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세상은 그 어느때보다 강렬히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으며 신자들도 느끼지 못할정도로 은밀히 기독교를 박해하고 넘어뜨릴 강력한 덫을 놓고 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교회도 성도들도 넘어지는건 시간문제인거 같다. 아니 이미 많이 부패와 타락이 진전이 되었음을 부인할수 없다.
이시대는 정말이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수를 믿어야 하는 때이다.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려는 마음을 잘라내야한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선을 긋고 주님편에 굳건히 서야 한다. 다니엘에게 전한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돌고 있는듯하다.
“이 환상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너는 이 환상의 비밀을 잘 간직해 두어라”
(11/24)
*천사는 무엇을 알려주기 위해 다니엘을 찾아왔습니까? (10:21)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이라.”
천사가 다니엘에게 알려주기 위해 가지고 온 ‘진리의 글’ 은 하나님이 보내신것으로 그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세상의 역사에대한 말씀이다. 천사장 미가엘이 소식을 전하는 천사를 돕는 이유는 마귀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가로 막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영적인 세계를 우리는 볼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것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선한 천사들은 역할분담이 확실해 보인다. 소식을 전하는 일, 싸우는 일, 치료하고 위로하는 일…이렇게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을 창조하신 분명한 목적이 그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심임을 알려주신다.
엘리사의 집을 불병거와 불마차를 탄 천사들의 무리가 지키고 있는것처럼, 악한 나라를 지키는 악한 마귀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신자들의 기도와 간구가 더디게 응답되는 것도 이와같은 영적인 전쟁이 원인임을 깨달을수가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바는 이루시도록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자.
응답이 더디옴으로 인하여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한번이라도 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것이 신자들에게 크나큰 유익의 시간임을 잊어선 안되겠다. 시편기자가 괴롭고 힘들때 부를수 있는 이름, 붙들수 있는 이름이 있음이 그에게 큰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았는가!
전능하신 하나님, 능력있는 천사들을 동원하셔서 신자들의 삶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늘 교통함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감사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주님을 믿고 어디서든지 쉬지말고 기도하는 주의 용사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11/25)
*천사가 말하는 모든 일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12:9-10)
“많은 사람이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악해질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것이다.”
다니엘의 마지막 장은 세상의 끝 날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기독교 핍박을 통해 순교를 당한 수많은 영혼들이 영생을 위하여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지만, 끝까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죽은 영혼들은 영원한 치욕을 얻기 위해 부활할것이다.
지혜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으며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특히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핍박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게 될것이라고 했다.
핍박을 통해 믿음을 잃어버리는 자도 있겠으나 많은 사람이 그 시간을 통해 연단을 받아 더욱 믿음의 삶을 증진하게 되므로 신자라면 그와같은 시간이 찾아옴을 볼수록 더욱 인내하여 소망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연단을 받는 사람들이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의 진의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연단을 통해 깨닫고 알게된 믿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시간을 잘 버티고 오히려 기쁘게 여기는 사람은 곧 도래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는 성도가 될것이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을 들으며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기를 소망한다.
“너, 다니엘아, 너는 끝까지 신실하여라. 너는 죽겠지만, 끝날에는 네가 일어나서, 네게 돌아올 보상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