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할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까? (25:9)
“바로 이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본문에 기록된 ‘그날’ 은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예언(24장)에 이은 끝까지 남은자가 구원받은 기쁨의 찬양을 부를게 될 그 날에 대한 예언의 기록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절대로 변함없으시고 완전하게 성취됨을 이사야는 선포하였다.
악에 대하여서는 완전한 심판을, 선에 대하여는 구원을 성실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이루어 내신다.
“새 포도주가 마르며, 포도나무가 시든다.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찼던 사람들이 모두 탄식한다.” (24:7)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25:8)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가 악인과 의인들 사이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세상을 즐기며 세상의 기쁨만을 누리고 살았던 인생들은 그 기쁨이 탄식으로 변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악한 세상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끝이없이 흘렸던 눈물들은 그토록 그리워한 그리스도께서 직접 눈물을 닦아 주시는 행복의 결말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바로 이와같은 종말의 시나리오는 이미 완성이 되었으며, 현세에서 실행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으시다. 생각지 못한 때에 그 날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들어야 하며, 영적인 눈을 열어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8/15)
*그 날이 오면 망할 뻔한 사람들과 쫒겨났던 사람들이 돌아와 어떤 행동을 합니까? (27:13)
“그 날이 오면, 큰 나팔 소리가 울릴 것이니, 앗시리아 땅에서 망할뻔한 사람들과 이집트 땅으로 쫒겨났던 사람들이 돌아온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거룩한 산에서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앗수르, 바벨론, 애굽, 등 초 강대국들의 심판과 멸망을 예언하면서 그 억압가운데서도 끝까지 남은 자들이 유다땅으로 돌아올 것을 선포하였다.
리워야단과 용은 바로 그들 나라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을 들으 그 짐승들을 죽이실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은 이 땅의 심판날이 임하는 그 날을 또한 상징하고 있다. 마지막 날에 뱀, 용이라 불리는 사탄과 마귀의 세력은 심판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칼에 모두 멸절되고 말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강력한것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다시오셔서 이 땅을 심판하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 갔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인내한 사람들을 본국으로 돌아오도록 하셔서 그들에게 기쁨을 회복케 하실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그 날이 오면, 세상 곳곳에서 믿음을 지킴으로 인하여 어떤 이는 숨어지내고, 어떤 이는 고난을 당하고, 조롱과 외면을 당하며 살았을 지라도 땅 끝까지 찾아내어 그들을 천국 본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아, 그날이 오면, 주님께서 유프라테스 강으로부터 이집트 강에 이르기까지, 너희를 알곡처럼 일일이 거두어들이실 것이다.”
이 예언이 우리의 소망이며, 멀지 않은 어느 날에 실상으로 다가오게 될것이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고 믿음안에서 주님이 주신 삶을 거룩하게 경건하게 살수 있어야 한다.
(8/16)
*주님은 어디에 주춧돌을 놓으신다고 말씀하십니까? (28:16)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하여 본 돌이다.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백성이 왜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북 이스라엘의 수도와 같은 사마리아는 방탕함과 교만이 원인이었다. 그 원인을 제공한것이 물질의 풍성함때문이었다. 너무나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여서 모든 자원이 풍부하니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욱 의지하였던것이 원인이었다.
“술 취한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인 너 사마리아야, 너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남유다의 심판의 원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다 사람이 포도주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독한 술에 취하여 휘청거린다. 제사장과 예언자가 독한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환상을 제대로 못 보며, 판결을 올바로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가운데 성전의 타락이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제사장, 예언자들이 방탕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지도 못하였다. 결국 하나님은 그 타락한 성전을 무너뜨리시며 그들의 교만함을 심판하시게 된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이 비틀거리면 교회뿐만 아니라 나라까지도 희망이 없어진다. 성도들이 세상의 물질에 비틀거리면 소망을 잃고 길을 헤매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절망에 빠지게 될 백성들에게 한 소망을 제시하시는데 바로 시온에 놓일 모퉁이돌이다. 눈치챘겠지만 이 모퉁이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시온은 예루살렘, 그리고 하나님의 집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새롭게 지어질것임을 예언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위에 세워지는 아버지의 집은 결코 무너질수 없다. 왜 집이 무너지는가? 기초가 약해서일 것이다. 모래위에 짓는 집이 무너진다. 세상의 물질과 방탕과 교만함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자재들이다. 금방 화려하고 든든해보여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퉁이돌이 되시면 가장 강력한 기초가 되시기 때문에 그 인생은 무너질 염려가 없다.
오늘 우리의 교회, 나의 인생의 기초가 잘 놓여졌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의 물질인가? 그리스도인가? 세상의 것으로 기초를 삼은 인생은 날마다 불안함을 느낀다. 있어도 풍성해도 불안해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된 인생은 없어도 행복하고 부족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당신의 삶의 기초는???
(8/17)
*주님이 재앙을 내리셔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29:22-24)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지 않게 하시고, 다시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며, 마음이 혼미하던 사람이 총명해지고, 거르스던 사람이 교훈을 받을 것이다.”
남유다의 범죄로 인하여 임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이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경고에도 그들은 경고를 무시하며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마음으로는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탐심의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이와같은 외식적은 신앙을 가진 백성들에게 내린 재앙이 있다. 그들의 들을 귀를 막으며 보아야 할 눈을 막아 버릴것이란 말씀이다. 영적인 무지로 덮여져서 진리에 대하여 어두워지는 화를 받게 되겠다는 것이다. 소돔에 임할 심판을 롯이 사위들에게 알렸지만 그들은 그 경고를 무시하며 농담으로 여긴것과 같다. 노아시대에 홍수의 심판을 알렸지만 미친소리로 들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진노 가운데서 가장 두려운 진노이다. 결국 이와같은 진노를 당하게 되면,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지혜를 잃게 되기 때문에 영적인 방황이 찾아올것이다. 아무리 문제들을 하나님없이 스스로 풀어볼려고 하지만 얽힌 실타래를 풀기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후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들에게 희망의 예언을 해 주셨다. 영적으로 무지하여 마음이 혼미했던 자들이 총명하게 되며 다시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하는 때가 오게 될것이라는 것인데, 그 날이 바로 메시야의 초림의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눈먼자를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는 듣게 하실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땅에 충만하게 퍼져서 세상 곳곳에서 방황하던 인생들에게 새소망을 주실 것이다. 이미 그 날이 우리에게 왔고 지금은 은혜의 때요, 말씀이 흥왕하는 때이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어야 하며, 눈 있는 자는 보아야 한다. 또 다시 불순종하여 영적인 귀머거리, 장님이 되지 않도록 계시하여 주신 생명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받고 순종하여 총명을 얻어야 한다.
(8/18)
*주님은 복종하지 않는 유다 백성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십니까? (30:18)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복되다.”
앗수르를 두려워한 남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이집트를 더 의지하므로 인하여 당하게 될 심판을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거듭되는 회개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오히려 말씀에 대하여 귀를 막고 불순종의 길을 선택한다.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불순종의 댓가는 혹독할것이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진노중에라도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환난을 당하지만 회개하고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복을 다시 내려주신다.
그러므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환난을 당해 심히 괴로우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인내한다면 그 사람은 소망을 이루게 되는 연단받은 자가 될수가 있다. ‘연단’ 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Character’ 인데 그런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인내하는자가 New Character 를 얻게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을 이루는데 최적화되는 Character를 얻도록 오래 참아야 한다.
오래참는자가 복되다. 3월에 심은 농작물이 죽은듯 보였는데 처분하지 않고 기다렸더니 8월에 열매가 열렸다. 신앙은 인내없이는 온전해 질수가 없다. 주님도 제자들을 기다려주셨다. 열매를 보기를 원한다면, 인내하며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때에 열매를 보리라.
(8/19)
*주님이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영을 보내주시면 황무지와 광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2:15)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공의로운 하나님을 믿는다. 공의의 하나님은 모든것을 우연히 하시는 것이 없으시며, 계획하신대로 이루시되 심판과 회복에 대하여 흔들리시는 법이 없다. 말씀하신것은 무슨일이 일어나도 반드시 성취하시며 약속하신것도 완벽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와같은 공의는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언제나 적용이 되어 그들이 죄에 빠질때는 심판을 멈추지 않으시지만 회개할때는 회복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으신다. 세상의 나라들이 아무리 강해도 사람 앞에서 눈하나 깜짝이지 않는 사자처럼 그들을 심판하시지만, 지키셔야할 인생이 보이면, 사자가 어떤 적들에게 자신의 먹이를 놓치지 않는것처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앗수르가 남유다를 공격했으나 적들을 물리칠수 있었던것은 백성들의 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었다. 악한 마귀의 공격으로 페허처럼 되어버린곳이라도 하나님이 회복시키면, 어느새 황무지가 기름진 밭이 된다.메마른 광야와같은 삶도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거두는 땅으로 변화될 수 있다.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일어나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일 년이 채 되지 못하여 몸서리 칠 일이 생길 것이다.”
서 있는 자는 넘어질것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신자들의 삶에 공의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을 믿고 세상의 의지하여 잘 나가는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언제 어디서 균열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완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는 세상의 어떤 균열속에서도 굳건히 보호받는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8/20)
*이사야는 참으로 위대하신 주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무엇을 이뤄 주신다고 말합니까? (5-6)
“저 높은 곳에 계시면서도 시온을 공평과 의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너로 안정된 시대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늘 백성을 구원하시고, 지혜와 지식을 주신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귀중한 보배다.”
앗수르가 남유다를 침공했을때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는 조공을 바치며 온갖 굴욕을 당하며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앗수르가 그 조약을 깨면서 재차 압박을 가해오자 그제서야 하나님께 회개하고 구원을 간구하기에 이른다.
뒤늦은감이 있지만 히스기야의 회개를 수락하신 하나님이 전면에 나서시자 일은 순식간에 마무리 된다. 초강력했던 산헤립의 군대였지만 하루 밤 사이에 천사들에 의하여 초토화가 되고 유다땅에서 물러가게 되었다.
이후에 남유다땅에 넘쳐나는 구원의 기쁨과 은혜 그리고 풍요로움이 온 땅에 가득하였다.
이사야는 진노중에라도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외면하지 않으심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큰 보배라고 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혈통, 배경이나 직위, 그리고 물질에 좌지우지 되시는 분이 아니시다.
기독교 집안이라고 무조건 구원하시지도, 불신자라고 무조건 심판하시지도 않으시며 오직 한 영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며 온마음을 다해 신뢰하는지 그것만 보신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것이 가장 큰 지혜이며 그 지혜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됨을 알지어다. 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어떠한 고귀한 행실로도 구원을 얻을수가 없지만, 가만히 하나님만을 온마음다해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구원이 임한다.
(8/21)
*그때에 주님께 속량 받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35:10)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세상과 혼합시키고 멸망시킨 나라들에 대하여 완전한 심판을 예고 하셨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방백들과 나라들이 처절하게 무너져 내림을 보게 하셨다.
에돔같이 최고로 요새화된 민족도 간단히 심판하여 진멸하신다. 그들을 광야와 같이 메마르게 하시고 사막처럼 절망속에 빠지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반면 택하신 백성들, 회개하며 하나님께 영원한 소망을 두는 자들에게는 정반대의 결과가 임할것을 예언하셨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줄거워할 것이다고 하신다. 광야와 메마른 땅에는 기쁨이 없고, 사막에 백합이 필수 없으며, 사막은 꽃이 피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광야, 메마른 땅, 사막과 같았던 죄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날이 오게 될것인데 그 날이 바로 메시야의 도래의 날이다.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
그리스도가 오셔서 모든 질병을 고쳐주실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예언은 단지 아픈 몸을 치료하실것을 말함이 아니라 죄인들의 심령이 고침을 얻게 될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육신의 잘됨보다, 영혼이 잘 되게 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던 자들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귀가 열려 복음을 들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을 가리킨다. 진정한 기쁨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 주 안에서 평안을 회복하고 누리는 때에 얻어지는 것이다.
내 영혼이 잘되어야 우리의 범사도 강건하게 될 수 있음을 계시의 말씀을 통해 기억하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메마른 광야와 같았어도 주의 이름 부르며 나아올때 광야에서 기쁨의 샘이 흘러 나게 되리라.
(8/22)
*백성이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36:21)
“백성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앗시리아 장군 랍사게의 조롱의 말에 백성들이 아무런 반응없이 입을 열지도 않은것은 왕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랍사게는 온갖 사탕발림으로 유다백성들이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말고 앗시리아 왕께 복종하면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악한 마귀는 이렇게 믿는 자들에게 은밀히 찾아와 온갖 감언이설로 우리의 마음을 훔치려고 한다.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진것은 그의 유혹에 반응했기 때문이며, 말을 섞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되심을 알지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믿는 자들은 랍사게 같은 세상의 유혹이 찾아올때에 거기에 반응하기 보다 진리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거룩한 주일에 하늘로부터 임하는 예배의 은혜에 집중하며 목마른 사슴처럼 주를 찾고 은혜에 갈급한 심령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8/23)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어떤 증거를 보이실 것이라고 말합니까? (37:30)
“금년에는 백성이, 들에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고, 내년에도 들에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을 것입니다.”
유다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순종하면 2년안에 전쟁은 그치고 그 이후엔 농사도 짓고 열매도 얻게될것이라는 예언이다. 전쟁중인 2년에는 하나님이 손수 농사를 지으셔서 먹이시겠다는 말씀이 참 인상적으로 들리는듯하다.
히스기야왕과 앗수르의 산헤립왕의 서로 상반대는 삶과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조언을 잘 받아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긴 히스기야에게는 전화위복의 은혜가 지속적으로 임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조롱하고 깔보고 무시한 산헤립은 전쟁에서 대패를 당하고 결국은 두아들에 의하여 살해를 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만나게 된다.
“무릇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1:6)
히스기야왕은 산헤립으로부터 받은 공갈, 협박이 있는 편지를 하나님앞에 내려놓고 기도하였다.
이 기도는 이시대 성도들에게도 크게 공감이 되고있다. 삶을 살다보면 벽이라는것을 만날때가 있다. 무슨 뜻인가? 내 능력밖의 일을 접할때가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와같은 때에 믿는 신자는 그 벽을 허물어보려고 인간적인 힘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보지만 그 벽이 하나님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 주신것이라면 견단코 허물지 못한다.
하지만 산헤립이라는 벽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기도로 승부를 걸었더니 하루밤 사이에 정리가 되어버린것을 볼수가 있다.
“그런 다음에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서, 앗시리아 군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 천 명을 죽였다… 산헤립은 그 곳을 떠나…”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내시며 새로운 길을 시작한 성도가 믿음으로 스스로 자립할수 있도록 도우시고 힘이 길러지도록 인도하심을 기억하자. 염려하지 말고 주만 믿고 나아가자!
(8/24)
*병이 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어떤 응답을 주셨습니까? (38:5)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앗다.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고, 보호하겠다.”
그 유명한 히스기야의 벽을 향한 기도, 절망 가운데서 부르짖은 기도의 응답을 기록하고 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수 많은 기도문 가운데서도 응답받는 기도를 떠올릴때 늘 거론되곤 한다.
그래서 어떤이는 벽을 보고 기도하기도 한다. 응답받는 기도자의 기도방식을 따라하는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방식만으로는 응답받을수 없고, 간절함이 전해져야 한다.
아무리 간절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 또한 응답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는 할수 있지만 응답받는 기도는 어려운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수고가 필요한것이다.
기도를 위한 기도란 내 요청을 구하기에 앞서서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져 있는지, 즉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주님,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 한 것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히스기야는 자신의 삶을 차근 차근 되새겨보고 있다. 과연 나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았고 또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께 물어본 것이다. 이와같은 회상을 통해서 회개와 탄식 그리고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과거를 회상하며 한없이 흐느껴 울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와 눈물을 받으셨고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셨고 그 증거까지 보여주셨다. 혹시 우리는 자기말만 하고 급하게 기도의 문을 닫아버리는 얌체 기도자가 아닌가? 기도는 대화이다. 말만하지 말고 듣기도 해야 한다.
대개 우리가 듣는 시간에 은혜가 오며 감격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이 나오는거 같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은밀히 계신 하나님과 대화의 시간을 넓혀 가도록 하자.
(8/25)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서 있습니까?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이사야 40장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구약성서가 39권이고 신약성서가 27권이며 구약은 오실 메시야, 신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말씀이다. 공교롭게도 이사야서도 66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39장은 구약에, 그리고 27장은 신약에 가깝다.
40장은 세례요한의 사명인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예비하라’ 라는 예언으로 시작되는데 신약 성서도 세례요한의 사역부터 시작됨을 볼수가 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작은 성경이라고 부르는거 같다.
오신 메시야를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외면되지 말아야 하고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뿐만 아니라 거짓이 전혀 없는 순도 100% 진리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임한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쳐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이 진리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것이 곧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임을 깨닫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말씀은 떨어질수가 없다. 떨어뜨리려고 하면 할수록 미궁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오직 말씀으로 인함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두려움이 없다. 말씀으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 주시기 때문이다. 알자, 하나님을 힘써 알자! 읽자, 하나님을 힘써 읽자! 끊이지 않는 지혜와 능력이 임하리라!
(8/26)
*주님은 처음부터 시온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41:27)
“나 주가 비로소 처음부터 시온에게 알렸다. ‘이런 일들을 보아라’ 하고 말하였다.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냈다.”
하나님은 남유다를 지키시는 보호자이심을 선포하며 이세상의 어떤 강력한 나라나 신들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서 당신의 백성들을 붙들어 주실것을 말씀하셨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데리고 왔으며, 세상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너를 불러냈다.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 버리지 않았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약한자를 강하게 하시며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시는데 그 어떤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그가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진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세상의 강한자를 사용하셔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도우신다.
남유다가 범죄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을 일으켜 세워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있었던 남유다 백성들을 본국으로 귀환시키셨다. 이세상의 우상들은 문화, 지식, 경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는 사자가 삼킬자를 찾는것처럼 우리 주위에 서성이고 있다.
하나님은 ‘내가 너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으니 두려워말라’ 고 거듭 말씀하신다. 어린 자녀가 아무리 캄캄한 길을 걸어가더라도 아빠가 손을 잡고 있으면 안심하는것처럼, 오늘도 나의 손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손을 놓치 않으면 된다.
(8/27)
*주님은 이스라엘 위에 무엇을 쏟으셨습니까? (42:25)
“주님께서 불타는 진노와 참혹한 전화를 이스라엘 위에 쏟으셨다.사방에서 불이 야곱을 덮었으나,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고, 불이 그를 태웠으나,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남유다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내리셨다. 하나님은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특히 당신의 백성들 자녀들에게 참고 또 참아 주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선을 넘어버릴때, 즉 죄가 관영할때 진노를 쏟아 내시게 된다.
이사야선지자는 백성들의 죄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는 일에 일조하는 사람이 바로 영적 지도자들 이라고 생각한다.
“너희 귀가 먹은 자들아, 들어아, 너희 눈이 먼 자들아, 환하게 보아라. 누가 눈이 먼 자냐? 나의 종이 아니냐. 누가 귀가 먹은 자냐? 내가 보낸 나의 사자가 아니냐.”
믿는 자들의 죄는 아주 심플하다. 주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말씀을 잘 못가르치며 성도들을 그릇된 길을 이끄는자는 삯군 목자일수 밖에 없고 그 뒤를 따르는 양들도 죄악의 길을 가는자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두가지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말씀구별, 지도자구별이다.
먼저 말씀을 잘 알고 있으면 목자가 헛소리할때 그것을 올바로 구별해 낼수 있게 된다. 신자가 말씀에 무지하면 목자가 무슨소릴해도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을 바르게 하고 옳은길로만 인도하시는 말씀에 우리의 눈과 귀를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