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어떤 사람이 안심하며 평안히 살 것이라고 말합니까? (1:33)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다. 잠언은 솔로몬과 몇 명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된 지혜의 길을 깨우쳐 여호와 신앙의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잠언은 구원의 초보를 다룬 책이 아니라 구원받은 그 이후 성도의 삶이 과연 어떠해야 함을 다루고 있는 신앙의 메뉴얼과 같은 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올바른 삶을 찾는 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슬기롭게 하시고 분별력을 주신다.
자녀들이 악한 세대에서 악한 길에 빠져 들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말씀을 읽도록 해야한다. 말씀에 붙잡힌 자녀들은 악한자들의 꾀에 넘어가지 않고 진리의 파수꾼이 될 것이다.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롭게 양육할때 자녀들은 부모의 말에 순종한다. 그러나,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 아무리 가르치고 훈계해봤자 자녀는 순종하는 척만 할뿐 그들이 원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자는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거만한 자는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와같은 삶이 자신에게 있다면, 지금 당신을 부르는 지혜의 소리를 경청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을 부어 주셔서 지혜를 듣기를 원하는 자에게 들리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잠언을 한절 한절 꼼꼼히 읽기를 바란다. 하루 하루 묵상이 늘어 날수록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가 채워지길 소망한다. 지혜를 얻었다면, 이제 지혜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길 하나님이 원하신다.
(7/2)
*지혜를 은을 구하듯, 보화를 찾듯하면 무엇을 깨닫고 터득할 수 있습니까? (2:4-5)
-주님을 경외하는 길을 깨달을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터득할 것이다. 이것이 지혜가 주는 큰 유익이다. 지혜가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올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어서 신자를 죄에서 부터 지켜주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이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자신의 순결을 지킨 사람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찾고 갈구하는 사람에게 지혜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명의 친구는 바벨론 포로로 있었으나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서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몸을 먹지 말아야할 음식을 통해 더럽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게 되었는가? 더 무섭고 강력한 핍박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무엇이 옳고 그런가에 대하여 전혀 요동함이 없는 강인함을 보여주었고 그 모습으로 인하여 세상에서나 특히 하나님께 더욱 인정을 받는 인물들이 되었다.
세상은 점점 어두어져가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더럽히려고 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 분별력을 빼앗아 가고 있다. 이런 세대 가운데 신자들이 가져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 분별력을 곤고히 하여 악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 뿐이다.
(7/3)
*지혜의 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3:17)
-즐거움과 평안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의 길을 마음에 깊이 가지는 사람이 그 길을 향하여 걸어갈 수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잊지 않도록 늘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려면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의 가치가 어느정도일까? 솔로몬은 그 가치가 은을 얻는것보다 낫고 금을 얻는 것보다 더 유익하며, 진주보다 더 값질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싶어하는 그 어떤 것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가장 높은 가치는 바로 믿는 자에게 내세의 생명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지혜나 지식이 영원한 생명과 비교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혜의 길에는 그래서 즐거움과 평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의 학문으로 부터 얻는 지헤도 분명히 필요하며 직업을 통해 깨달은 노하우도 우리에게 지식을 얻게한다.
하지만 그 모든 학문과 경험의 지혜의 기초 또한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나온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지 않으셨다면 인생이 어떻게 자연과 과학을 배우고 연구할 수가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을 배우고 연구할때나 삶의 모든 문제와 해결을 위해 하나님의 지헤를 얻음이 가장 옳고 명확한 것이다.
(7/4)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에 놓치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4:13)
-훈계를 놓치지 말고 굳게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훈계를 기쁘게 받으려는 마음도 지켜야 한다.
7월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가 10년전 개척 첫 예배를 드렸던 날이다. 하나님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근 4개월간 교회를 닫으셨다가 드디어 예배당을 오픈하도록 하셨는데 하필 그 날이 10년전에 개척예배를 드린 날이 될 줄이야...
우연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있으신걸까? 나는 4개월만에 교회의 문을 닫으신것이 마치 지난 10년을 되돌아 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다고 믿는다. 10년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더 집중해야 하는것이라고 믿고싶다.
지난 10년간 말씀을 전하고 말씀으로 성장하기만을 기대하고 달려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10년을 위한 계획은 더욱 더 말씀으로 단단해 지는것을 원하시는거 같다.
이세상에 수 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말씀을 놓치고 있다. 주시는 말씀도 기쁘게 받지 못하는거 같다.
왜 그럴까?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며 살려니 잃는게 많은거 같고 손해보는거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따른다면, 절대로 후회하는 일은 없을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의지하는 의인의 길은 동틀 때의 햇살 같아서 대낮이 될 때까지 점점더 밝게 빛나게 하실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씀을 외면하는 악인의 길은 캄캄하여 넘어져도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건강한 교회나 바이블 타임을 함께 나누는 모든 지체들이 딴 마음 품지않고 오직 지혜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지키며 우리의 시선을 모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7/5)
*아버지의 명령과 어머니의 가르침은 아이들을 무엇에서 지켜줍니까? (6:24)
-악한 마귀의 음란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한다. 잠언기자는 아들이 부모가 들려주는 지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할때 음행하는 여자에게 빠져 몸과 육체를 망친후에 한탄하며 ‘내가 왜 그 훈계를 싫어하였던가’ 라고 자책하는 날이 올거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남편들과 아들들에게 아내만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것이 하나님의 지혜임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그리고 아울러 하나님의 백성을 ‘내 아들’ 로 여기시는 성도들이 ‘음녀’ 로 지칭하는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음행하는 여자의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그 말은 기름보다 매끄럽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쑥처럼 쓰고, 두 날을 가진 칼처럼 날카롭다 그 여자의 발은 죽을 곳으로 내려간다.’
삼손을 유혹했던 드릴라가 삼손을 넘어뜨리고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힘을 잃게 만든 방법이 이와 같았다. 삼손은 이방여인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부모의 훈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정욕대로 여자를 골라 쾌락을 일삼았고 급기야는 나실인의 사명을 망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절한 재난을 당하였다.
‘너는 네 우물의 물을 마시고, 네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셔라’
남편된 자들은 아내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인도해 주셨음을 믿고 아내를 통해 주시는 부부의 샘물에서 흐르는 물을 마셔야 한다. 그렇게 할때만이 부부관계가 샘물처럼 맑고 인생의 갈증을 해소하여 줄 것이다.
성도된 자들의 삶도 그와 같다.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와서 마셔라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의 샘물이 되는 지혜의 말씀을 마셔야 한다. 주님의 눈이 독수리 눈처럼 우리의 길을 지켜 보신다. 주님의 훈계의 말씀들을 잘 받아 기억하여 순종하여 미련한 결과를 피할뿐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감사히 누리는 삶을 얻자.
(7/6)
*지혜없는 젊은이가 부도덕한 여인의 여러 가지 유혹에 따라나설 때 어떤 모습으로 비유됩니까? (7:21-23)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도 같고, 올가미에 채이러 가는 어리석은 사람과도 같고, 마치 자기 목숨을 잃는 줄도 모르고 그물 속으로 쏜살같이 날아드는 새와 같다.
삼손과 드릴라 두 사람중에 누구의 행동이 더 잘못일까? 애시당초 드릴라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삼손을 꼬득이지 않았다면 그런 사단은 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삼손이 나실인답게 경건한 삶을
살았다면 일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을까?
유혹하는 사람과 유혹에 빠지는 사람 누가 더심한 죄인일까? 죄의 무게를 떠나 두 사람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죄를 회개한 삼손은 용서함을 받게 되었다.
잘잘못을 굳이 따져야 한다면 나는 삼손쪽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왜냐하면 삼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말씀을 배운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르고 짓는 죄보다 더 나쁜것이 알고도 짓는 죄라고 본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알면서도 양심을 짓눌러 죄를 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이 엄청난 징계를 당하고 자신도 마치 구원을 잃어버릴것 같은 극심한 두려움에 빠지게 된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너의 손가락에 매고 네 마음 속 깊이 새겨두라고 교훈하고 있다.
지혜에게는 ‘너는 내 누이’ 명철에게는 ‘너는 내 친구’ 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그러면 유혹의 순간에
음행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요셉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몸에 지니고 다닌 사람이었다. 절체 절명의 위기 가운데서 그 지혜가 빛을 발하는것을 우리가 보았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분의 말씀을 외면한다면 당신은 마귀에게 무장해제된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키시도록 말씀에 우리의 자아를 맡겨 드리자.
(7/7)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8:13)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주님을 경외하는것이 바로 지혜이며 지혜를 얻는 자만이 영적인 죄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질수가 있다. 예수님도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우리의 이성과 자아로는 마귀의 공격을 제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는 충분히 이길수가 있다.
‘나 지혜는 교만과 오만, 악한 행실과 거짓된 입을 미워한다. 내게는 지략과 건전한 지혜가 있으며, 명철과 능력이 있다.’ (13-14)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 잠언기자는 은을 받기보다 금을 선택하기보다 지혜얻기를 구한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구하여 지혜를 얻어 지혜로운 자가 되고보니 역시 지혜를 얻는것이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간절히 찾고 사모하며 사랑하려는 사람을 만나 주시는 것이다. 지혜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는가? 주를 간절히 찾는자에게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지혜를 얻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지혜를 얻는 사람이 생명을 얻을수가 있기 때문이다. 영생을 얻는 지혜보다 더 귀한 지식이나 지혜가 이세상에 있는가? 절대로 찾을수가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지혜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놓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36)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전인격으로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 생명의 지혜를 얻는 자이다. 오늘도 영원한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붙좇는 자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7/8)
*솔로몬은 의로운 생명과 악인의 탐욕의 결과를 어떻게 비교합니까? (10:3)
-주님은 의로운 생명은 주리지 않게 하시지만, 악인의 탐욕은 물리치신다. 의로운 생명을 얻는자가 누구인가? 그의 입에서 지혜가 나오는 자이다. 의인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들은 생명을 살리지만 악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독을 머금고 있어서 오히려 생명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의 입은 멸망을 재촉한다고 하였다. 이 시대는 정말이지 입에서 나오는 말뿐만 아니라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언어들로 인하여 죽이고 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거 같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입을 조심하는 사람은 지혜가 있다. 의인의 혀는 순수한 은과 같지만, 악인의 마음은 아무 가치가 없다. 의인의 입술은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 없이 살다가 죽는다. ‘(19-21)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수다쟁이의 말들을 정리하여 기록해 보면 그 많은 말들 가운데 자신과 상대방에게 유익을 끼치는 요소가 얼마나 될지 찾아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해야 할때와 말아야 할때를 구분하는것도 지혜이다.
우리의 혀는 너무나 자유로운 존재라서 이것을 올바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독 혀라는 지체를 위해 이빨과 입술로 이중장치를 해 주신거 같다. 입을 다물어 버리면 자동적으로 말을 멈출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입을 닫고싶어도 마음에서 그것을 먼저 다스리지 못하면 말짱 허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입술이나 손가락의 제어할 수 있는 지체가 마음이며 그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것이 바로 지혜의 말씀인 것이다. 신앙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변화가 바로 언어를 사용하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배우자, 자녀, 부모, 직장동료,,, 성령께서 내 생각과 입술과 손가락을 제어해 주시는것을 느끼게 된다.
‘의인의 입술은 남을 기쁘게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만, 악인의 입은 거짓을 말할 뿐이다.’ (32)
오늘도 내것이라고 남이 보지 않는다고 나의 입술과 손가락을 방종에 내어놓지 않도록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지혜를 부어 주시도록 기도하자.
(7/9)
*겸손한 사람에게 따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11:2)
-겸손한 사람에게는 지혜가 따른다.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는것이 언행, 즉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항상 머리부터 숙이는자가 아니다.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고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그 도를 넘어서는 사람을 가리켜 교만한 자라고 불려지는 것이다.
이세상에서 마음껏 교만해도 되는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을까?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되면? 교만할 자유가 주어지는가? 그건 넌센스다. 이 땅에서 교만할 자유를 주는 위치는 없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젊어서 교만했던 사람도 노인이 되고 생이 저물어 질수록 겸손한 자가 되어져 가야한다.
하지만 그것이 벼처럼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것이 문제다. 나이 든 사람도 여전히 교만한 사람이 많고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는 어리석은 언행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이와 직분과 상관없이 늘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피조물이며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참지혜이다. 이 지혜를 얻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게된다.
다윗이 왕의 신분으로 교만이 극에 달했을때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받고 자신의 어리석었던 교만의 죄를 회개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행실만이 옳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15)
하나님의 지시와 교훈을 기쁘게 받자. 자신의 삶에 교만함이 보이고 어리석은 언행이 나타날때
더욱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거울은 우리의 외모만 비춰주지만, 말씀은 우리의 내면을 밝게 비춰주시기 때문이다.
(7/10)
*주님을 경외했을때 어떤 것들이 생깁니까? (14:26)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 자식들에게도 피난처가 생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궁무진하다. 끝이 없는 유익과 인생의 모든 순간을 흠없이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하신다. 이 유익은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미치게 된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않는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13;1, 14:1)
지혜로운 부모로 인하여 자녀들이 유익을 얻고, 지혜로운 친구로 인하여 다른 친구들이 그 혜택을 입는다. 지혜롭게 일하는 직원을 통해 회사가 유익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요셉의 지혜로 나라가 살고, 가족이 모두 구원받지 않았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때 하나님은 그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맡은 자에게 구할것은 충성’ 이라고 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히 한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것이 많으니라’ (14:4)
주님을 경외하는 자여!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이 무궁하다. 그에게 나와서 지혜 얻기를 게으르지 말라. 게으른 자의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헛되고 헛된것이리라. 그러나 슬기로운 자의 손에는 생명이 들려질 것이다.
(7/11)
*지혜가 주는 훈계는 무엇입니까? (16:11)
-주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은 무엇이든지 주님의 계획을 믿고 맡기는 사람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결정권을 하나님 손에 둘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말할수 있다. 왜 하나님께 모두 맡겨야 할까?
“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16:2-3)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려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게으르거나 무기력한 삶이 아니라 더욱 철저하게 인생을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다. 우리의 인생을 완벽하게 설계하신 하나님 두손에 자신의 삶을 내려놓을때 인생은 비로소 행복을 찾는다.
“재산이 적어도 주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재산이 많아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고 사는 것이, 서로 미워하며 기름진 쇠고기를 먹고 사는 것보다 낫다.” (15:16-17)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주어진 형편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자이다. 감사하면 기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욕심부리며 사는 인생은 아무리 배부르고 잘 나가도 만족이 없고 근심은 쌓여가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경외할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그 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성령께서 제어하시고 컨트롤하시도록 맡겨드릴 수 있는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 (16:32)
(7/12)
*슬기로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무엇과 같습니까? (18:4)
-깊은 물과 같다. 바다를 보면 깊은 물이 있고 얕은 물이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같은 물이지만 얕은 물은 외부의 환경에 휘둘릴때가 많다. 바람이 세게불면 물살도 거칠어 지고 물위에 떠 있는것을 요동치게 만든다. 하지만 깊은 물은 세찬 바람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어린시절 파도에 휩쓸려 위험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큰일이 날뻔했던 순간을 모면하게 만들어 준것은 공교롭게도 깊은 물이 주는 편안함이었다. 본능적으로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허우적대다가 나도 모르게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몰랐던 진리를 깨달았다.
깊은 물은 전혀 파도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 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깊은 물이 주는 도움으로 인해 여유롭게 잠수를 해서 물 밖으로 나올수가 있었다. 그 경험이 자칫 물에 대한 공포심에 빠질수 있었던 나에게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준거 같다.
사람의 말도 물과 같지 않을까? 잠언에는 유독 말에 대한 글이 많다. 한결같이 알려주는것은 지혜로운 자의 말과 어리석은 자에게서 나오는 말의 극명한 차이에 대한것이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의 말은 깊은 물과 같이 본인이나 상대의 마음에 편안함과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거 같다.
하지만 어리석고 무지한 자의 말은 듣는이에게 불안감을 주어 마음을 뒤흔들어 어지럽힌다. 마치 얕은 물이 바람과 파도에 요동쳐서 배를 좌초 시키는것과 같다. 잠언을 묵상하다보니 더더욱 말을 하는 지혜를 얻는거 같아서 좋다. 그러나 그저 립서비스로 끝이 나서는 안되겠다.
얕은 물처럼 받지 말고 깊이 있게 묵상해야 더 깊은 지혜를 얻는다. 깊은 물과 같은 주님의 은혜의 말씀으로 나의 심령이 변화를 얻어야 말과 언어가 새로워 지는것이다. 우리의 작은 지체인 혀는 겉으로 보이지 않은 탓인지 가끔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문이 닫혀있을때 말씀으로 잘 길들여 놓아야지 문이 열릴때 사고치지 않는다. 혀를 길들일 수 있는것이 슬기로운 마음이며 그 마음을 주시는 이가 성령이시다. 간절히 그를 갈망하여 믿고 사모하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열매가 사람의 배를 채워 주고,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의 결과로 만족하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 (18:20-21)
(7/13)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다해도 결국 성취되는것은 무엇입니까? (19:21)
-오직 주님의 뜻뿐이다. 계획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계획없이 막 살겠다는 마음도 계획이다. 그러므로 막 살겠다는 계획부터 빈틈없이 세워놓은 계획까지 사람은 어찌보면 계획속에 살아가는 존재인거 같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계획은 아담이후로 점점 갭이 커지는거 같다.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안에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본적있는가?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계획을 세울때부터 그것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자칫 내 생각이 하나님보다 앞설때가 많으므로 하나님안에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마음과 생각에 성령의 조명이 비치도록 해야한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해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계획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밀려 들기 때문이다. 가나안땅 정탐후 백성들은 광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였다. 그들 마음에 이미 현상황에 대한 불신이 생겼기 때문일것이다.
그들의 계획이 악했던 까닭은 가나안에 들여 보내시려던 하나님의 계획을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현실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들어갔다면 40년일찍 약속의 땅에 입성했을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이 아닌 광야로 들어가려는 계획은 현실과 타협하는 연약하고 믿음없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악한마음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성취됨을 보게 될것이지만, 의로운 마음으로 선한 계획을 세우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의 성취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내 뜻보다 더 크고 깊으신 주의 뜻만이 이땅에, 우리의 삶에 이루어 지시길 기도합니다.
*기도부탁-예전에 알고지내던 김한근 청년이 심장이식수술을 앞두고 폐에 물이차서 호흡곤란으로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후에 곧바로 형제의 이름을 부르며 잠시 기도부탁 드립니다!!!
(7/14)
*겸손한 사람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무엇입니까? (22:4)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다. 이것들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말함보다는 구원받아 하나님을 소유한 자가 누릴 내세의 기업을 말하는것으로 본다. 하지만 현세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자에게 이 보상은 주어진다. 욥,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인물들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잠언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올바른 삶의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재물과 명예, 은금과 은총, 겸손과 거만, 게으름과 성실 등이 그 선택 대상에 속한다. 이러한 선택은 사람의 인생관에 따라 좌우되며 그 인생관은 여호와를 경외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
“귀를 기울여서 지혜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의 가르침을 너의 마음에 새겨라. 이는네가 주님을 의뢰하며 살도록 하려고 오늘 내가 너에게 특별히 알려 주는 것이다.” (22:17-19)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누리는 축복이 많다. 그 중에 한가지는 묻는 사람에게 바른 대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며, 길을 잃은 자에게 옳은 길을 명확히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을 주는것보다 귀한 가치가 있는데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 겸손과 경외는 떨어질 수 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겸손하지 않은자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자가 교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질문 같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이 우선이다.
주님을 언제나 먼저 경외하는 자의 삶과 행동을 붙들어 주시는 돌보심이 임하기 때문이다.
(7/15)
*참된 우정은 무엇입니까?(24:26)
-바른 말을 해 주는것이다.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철 없이 살때 그의 옆에 있었던 친구들은 모두 거짓 우정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재산을 탕진하고 힘들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도 그에게 옳은 말을 해 준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 명이라도 그를 친구로 여긴 사람이 있었다면, 참된 말로 충고를 했을것이다. 물론 그런 친구가 있었어도 그 말을 들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그런 충고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똑바로 볼수 있었을거 같다.
친구를 많이 둔 사람은 해를 입기도 하지만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기도 하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않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남을 친구로 사귀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를 사랑하기 위하여 사귈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제가 아닌 이상 남을 사귀는 목적이 자칫 탕자의 수 많은 친구들과 같이 될것이다.
마치 단물을 쪽쪽 빨아 먹고 더이상 나오지 않자, 가처없이 버리는 그런 친구는 아무리 많은들 모두 헛된 우정일뿐이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있는가? 있기를 원하는가? 그런 친구를 얻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먼저 그런 우정을 보이면 된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하셨다. 우리보다 먼저 당신의 모든것을 다 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이제 친구라고 부르신다. 이런 친구가 있을까?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없다. 이런 친구는 절대로 만날수 없다. 오직 한분뿐이다. 그래서 그 친구를 잃지 않는것이 가장 지혜로운 친구이다.
다윗이 요나단의 죽음소식을 듣고 그렇게 통곡하고 슬퍼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다시는 그런 친구를 만날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자신은 요나단에게 해준게 없다고 생각해서 탄식한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이 찾아와도 내 친구 되어주신 예수를 놓치지 않고싶다. 나에게 모든것 주셨고 여전히 주시는 참 친구인 그분을 꼭 붙들고 싶다. 그리고 나도 부족하지만 그 친구에게 진실한 사랑을 주고싶다.
(7/16)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6:1)
-미련한 사람에게는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마치 여름에 눈이 내리고 추수 때에 비가 오는 것과 같다고 한다. 왜 미련한 자에게 영예(honor)가 맞지 않는가? 자칫 그 미련함으로 인하여 마치 여름에 눈을 내리게 하거나 추수 때에 비를 내려 일을 망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미련한 자는 완악한 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완악한 자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런 자에게 권력을 얻는 직책은 오히려 공동체에 해를 끼치기 쉽다.
미련한자는 자신을 볼 수 있는 영안이 닫혀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같은 죄와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
미련한 자는 스스로를 영예롭고 의롭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우니만큼 세우는 자들이 잘 분별해야 한다. 미련한 자는 영예를 얻기 위하여 온갖 속이는 일을 자행하지만 거기에 대하여 후회함이 없다.
예수님 시대에 율법주의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마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무리들일것이다.
그들은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직분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영화로움을 받고 스스로 의로움을 얻으려했다.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주님에게는 발가벗겨지듯이 드러났다.
예수님은 그들의 종교적 행동을 외식이라고 질책하셨다. 그들은 마치 은을 입힌 토기와 같아서 겉 모습은 고상한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가짜요, 가치 없는 인생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눈여겨 보시는 인생은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담고 있는 성도 이다. 겉모습은 남들 보기에 그다지 영예롭지 못하게 보이지만 그의 삶을 열면 존경스러운 행동이 가득하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선을 베풀고 질그릇처럼 티나지 않게 맡겨주신 역할을 충실히 감사하게 이루어 내는 그 사람이야 말로 ‘찐 성도’ 이며 하나님의 지혜를 가득 담은 인생이다.
(7/17)
*나라가 오래 가려면 어떠한 사람이 다스려야 합니까? (28:2)
-슬기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 다스려야 한다. 신자가 담대해지는 때가 있다면 언제일까? 자신에게 삼손같은 힘과 능력이 있다는것을 깨달을때일까? 그건 그저 피지컬의 자신감만 있을뿐이다. 신자의 담대함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데 자신은 연약한 존재이고 하나님만이 광대하신 분이심을 아는 지식이 있을때 나오는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도 이런 슬기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 다스릴때 부강할 뿐만 아니라 오랜시간 동안 나라가 안정을 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28:5)
하나님께서는 재물을 의지하는 자에게 재물을 오랫동안 맡겨주시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인가를 더 붙잡는 자를 선호하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사람이 부패한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한다면 결국 어리석은 결말을 보게 될것이다.
곧은 마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곧은 길을 향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나아가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사람이다.
(7/18-19)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은 탈무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아주 체계적이다. 연령에 맞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연령에 맞게 말씀을 가르치는것이 유대인 가정의 특징이다.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사랑스럽게 교육하기로 유명하다.
유대인 교육은 철저하게 쉐마로 시작해서 쉐마로 끝난다는것이 특징이다. 쉐마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는 뜻으로 모세가 가나안 세대에게 전했던 교육이며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말씀으로 교육하는 전통이 이어지는 가정이야말로 명문가정이 될 수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렇게 만들어 가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와 기술로 훌륭한 가문을 이룰수 있을지 모르지만 믿음의 가정은 만들수가 없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가정의 무너짐이 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만 가르치고 얻게해 주기 때문일것이다.
모든 물질과 지혜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배우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니 영적인 자유함을 얻지 못한다. 그 결과로 거기에만 얽매여 살게 되는것이다.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나타나는거 같다.
내가 잠언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아굴이라는 사람이 기록한30:7-9이다.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은 죽기전에 이 두가지가 자신의 삶가운데 늘 임하기를 기도하며 그렇게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고백이야말고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삶을 지혜롭게 살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믿는다. 무엇을 주시든 주신데로 감사하고 만족할줄 아는 삶이 신앙의 자세이다.
유대인들은 반쪽자리 말씀을 가지고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민족으로 군림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얻지 못하여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민족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하나님과 말씀만을 의지하며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온전히 믿는 삶이야 말로 이 땅에서 완벽한 인생, 명문가정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반쪽이 아닌 전심으로 주님을 믿고 말씀으로만 자녀를 훈계하고 양육하여 믿음의 대를 이어 나가길 소망합니다.
(7/20)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르무엘에게 어떤 것이 임금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말합니까? (31:4)
-포도주를 마시는것은 임금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다.독주를 좋아하는 것은 통치자들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다. 술을 마시면 법을 잊어버리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판결을 불리하게 내릴수 있기 때문이다.
잠언의 마지막 장에 도착했다. 구절 구절 지혜와 명철의 말씀들로 가득해서 고개만 끄덕이다가 순식간에 지나간 듯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그 지혜를 담은 질그릇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 장에는 특별히 왕에게는 아내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유능한 아내를 맞는것은 진주보다 더 가치있는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될때는? 상상에 맡기겠다.
솔로몬은 무려 천명이나 되는 아내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아내들로 인하여 혹독한 경험을 하게되었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왕으로 전락해 버렸다. 각국에서 시집온 아내들이 저마다 본국의 우상을 섬기는 바람에 그들이 이스라엘에 우상숭배문화를 퍼뜨린 일등공신이 되어 버렸다.
르무엘 어머니는 입만 열면 지혜가 저절로 나오고, 혀만 움직이면 상냥한 교훈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아내를 얻는것이 남자에게 가장 큰 축복임을 가르친다.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를 던진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는다.”
외모를 치장하는데 삶을 허비하는것보다 더 귀하고 가치있는 일이 하나님을 경외하는것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외모를 치장하는것은 정상적이며 그렇게 해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외모를 잘 가꾸어도 내면이 엉망이면 그 정체는 금방 드러나게 마련이다.
여호와를 경외함만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 근본을 가지는 자가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인생이다.
오늘도우리의마음으로부터임하는하나님의지혜가우리의말과행실을지키시도록맡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