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
*전도자가 세상 일에 대해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1:14)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지 정 의를 지닌 지상 최고의 피조물이다. 동물들은 자신의 외모, 환경에 대하여 불만족이 없이 본능에 충실하면서 살지만, 인간 만큼은 다른다. 늘 추구하는것이 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고 하고 의미있는것을 찾아 다니고 쾌락을 얻으려고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삶이 대단해 보이는거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다 정해져 있는 선 안에 있는거 같다. 물질, 명예, 권력,모험 이 네가지 안에 거의 다 포함되지 않나 싶다. 모두다 꼭 필요한거 같아서 더 노력하고 애써 보지만, 잡으면 잡을수록 달아나거나 가졌다 하더라도 허무함이 남는다.
전도서가 성경안에 들어있는 이유가 뭘까? 인생에서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려는 사람들의 시도를 중단시키려는데 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하나님께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해 아래에서” 라는 말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세계와 대조되는 말이므로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않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죄악을 가리키고 있다. 그가 ‘헛되도다’ 라는 말을 무수히 쏟아내는 이유도 하나님의 제외시킨 인간의 생각이나 계획, 그리고 행동이 결국 헛된것일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전도서를 묵상하면서 “해 아래” 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 를 바라보며 범사를 하나님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행동하며 사는 도전이 끊임없이 용솟음치기를 소망합니다.
(7/22)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 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2:24-25)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 공급하지 않으시면 인간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것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공급을 통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수고와 즐거움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배가 될 수가 있다
인생이 자신의 지혜로 부와 명예를 얻어서 부유하게 사는것과 어리석은 자가 죄 가운데 빠져 살아도 그들의 마지막날에 대한 운명은 똑같다. 사람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결국 만사가 다 헛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는 해결 받지 않은 채로 이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있는것을 본다.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므로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 있다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솔로몬이 말년에 해 아래에 있는 모든것이 헛되다고 말한 이유는 자신의 경험때문이었다. 잠시 누리는 즐거움과 쾌락이 있을뿐 결코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그 어떤 것에도 참된 기쁨과 평안이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애시당초 그런 삶을 추구하지도 누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철저하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더니 말년이 될수록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감사하는 시편기자가 되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인생은 이 세상의 모든 삶에서 만족과 소망을 얻게 되지만 재물을 쌓아놓고 이제 그것을 누리려고 해보지만 허무함과 헛됨을 동시에 얻게될것이다.
(7/23)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14)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한결같으시며 거기에 더하거나 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도 누군가가 한가지일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그 근성에 놀라고 두려움도 가진다.
하나님께는 랜덤하게 하시는 일이 없고 우연하게 행하시는 일도 없다. 모든 일이 철저한 계획아래 있다. 창세전에 계획하신 그대로 진행하신다.
태양과 달을 만드신 그대로 운행하신다. 중간에 수정하시거나 보완하시는게 없으시다. 왜냐하면 완벽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초에 정하신 그 규칙대로 자연만물이 복종한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이 자연앞에서면 두려움을 느끼는거 같다.
거대한 산을 보거나 장대한 폭포앞에서 아연실색하는 것이다. 결국 그 두려움이 그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 그대로를 섬기는 오류가 죄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확고부동하시다. 흔들림이 없고 요동함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또한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을수가 있다. 한결같고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이 변함없이 믿음을 지켜나갈때 오히려 핍박하는 자들, 불신자들이 놀라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욥과같이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주권을 인정하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수 있어야 한다. 다니엘과 세친구들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카이오스(시간) 에 집중할때 하나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섭리에 모든이가 감격하게 되리라.
(7/24)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입니까? (5:19)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함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신것이다. 그렇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것의 크고 작음보다 주신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얻은 소득이나 삶에 불평하고 산다. 왜냐하면 더 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이 불만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6:2)
인간 사회에서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도 행복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그저 재물을 많이 가지면 행복하게 될것임을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것이 헛된 악한 병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믿음은 오히려 인생을 망가뜨릴수 있는 독과 같은 병폐가 된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부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 부를 이루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데 그 부요함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물질이나 부자가 되는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수고를 통해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임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절대로 인생을 욕심과 탐심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다. 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수고로이 일할수 있는것과 주시는 물질에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7/25)
*사람들이 서슴치 않고 죄를 짓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8:11-13)
-죄를 짓고도 곧바로 벌이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이 백 번 죄를 지어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것을 본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그 사람이 행하는 일이 실패하도록 만드신다. 사는 날이 마치 그림자 같이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자의 삶은 분명히 잘 되게 인도 하신다. 기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하라고 당부한다. 특히 어려움이 찾아올때에는 더더욱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시기 때문에 좋은때는 기뻐하면 되고 나쁜 때가 찾아올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높은 뜻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 또한 지나가게 될 것이다.
“일을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가 더 좋다” 8
누구나 공감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끝내는 가는 시작하는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우리 인생의 끝은 더욱 그러하다. 솔로몬은 죽는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인생의 끝이 하나님을 모르는 삶이라면 태어나지 않음보다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삶이 힘들고 무거울지라도 예수믿고 구원받은 삶이라면 인생의 끝은 영원한 행복이 되는 것이다. 힘들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어려움 속에서 나를 건져 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7/26)
*솔로몬은 하나님이 사람의 어떤 것까지 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까? (9:1)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그들이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을 깨달았다.
의인들이 의로운 삶을 살아도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오히려 미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 혹은 그의 삶에 불행이 찾아올수도 있다. 욥이나, 요셉의 삶이 그러했다. 본인들도 왜 자신의 삶에 그런 어려움이 닥치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몸과 마음이 심히 고생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하게 보이던 삶이 불행으로 끝나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계획을 깨닫고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비난했던 자들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반전이 있었다. 그러므로 신자된 자는 살아 있는 동안 임하는 어떠한 일에 대하여 (좋든지, 나쁘든지) 미리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된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4)
그러므로 믿음있는 사람은 생명있는 동안에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주어진 삶을 의롭게 사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희망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모두 이기는 것이 아니며, 용사라고 해서 모든 전쟁에서 이기는것이 아니다.” (11)
이기고 지는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믿는 자는 이겨도 하나님께, 져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다. 그런 삶을 사는 자가 더 약해지겠는가 강해지겠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외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더하시기 때문에 더 나은 결과를 안겨 주실것이다.
오늘도 생명주심에 감사하며 작은것에서부터 하나님 손에 맡기는 삶을 살아 봅시다!
(7/27)
*솔로몬은 세상 모든 것이 헛되다고 적고 마지막 결론을 어떻게 맺습니까? (12:13)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 분이 주신 계명을 지키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다 심판하신다.” (13-14)
전도서를 쓴 솔로몬은 마지막 당부로 ‘하나님을 기억하라’ 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인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살아 있을때, 즉 인생에 짙은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빛을 잃기전에, 소망이 사라지기 전에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전지 전능 하신 창조주이심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주도면밀히 지켜보고 계심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코람데오) 서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으면 된다.
내 육체는 열심히 인생을 즐기려고만 할때 나의 영혼은 하나님의 눈을 바라보며 인생을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아가려고 나의 육신을 믿음의 삶으로 이끌것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육체를 따르면 모든것이 헛됨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올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늘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며 헛된것을 쫒지 않고 영원한것을 사모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거기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한다. 얽매이면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루를 살든 백년을 살든 이세상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의 주인이신 주님만을 바라본다.
‘영원한것을 붙잡기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것을 버리는것은 어리석은것이 아니다’ -짐 엘리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