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나의 사자”
(12/29)
*하나님의 사랑에 백성들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1:2)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나 주가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구약 성서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는 스룹바벨에 의하여 세워진 두번째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다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고발하고 경고하고 있다. 성전 중심의 삶이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므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기초가 된 삶을 말하는 것이다.
유다백성들은 왜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기 원했을까? 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것일까? 하나님은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하신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그당시 성전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백성들의 영적상태를 지적하셨다.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권을 빼앗긴 사건이 보여주듯이 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장자의 축복에 대하여 정말 어리석을 정도로 무지했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낼름 팔아 먹었던 것이다. 반면에 비록 욕심으로 인한 행실에 대하여 징계를 받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너무 사모했던 사람이었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의 손을 들어주셨고 에서는 그 일로 인하여 완전 딴 길로 치우쳐 버렸다. 그결과 그의 후손들인 에돔자손들은 멸망당할때까지 야곱의 후손들을 싫어하고 경멸하며 괴롭혔다.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의 눈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희는 나 주에게 아무렇게나 상을 차려 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그런 것들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그가 너희를 반가워하겠느냐? 너희를 좋게 보겠느냐?”
가인, 에서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아무리 소를 잡고 양을 잡아봐야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될 뿐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 이라고 하셨지 않은가! 자신들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마음에 통회하는 예배를 멸시하시는 법이 없으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보기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상태부터 점검하는것이 순서이지 싶다. 겉모습만 성전중심이 아니라 온 마음과 뜻과 행실이 하나님 중심이 될수 있도록
주님앞에 나와 간절히 자신을 내려놓는 진실한 예배자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12/30)
*제사장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2:7-9)
“그러나 너희는 바른 길에서 떠났고, 많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버리고 곁길로 가도록 가르쳤다. 너희는 내가 레위와 맺은 언약을 어겼다. 그러므로 나도, 너희가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였다. 너희가 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율법을 편파적으로 적용한 탓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제사장들에 대하여 무서운 경고의 메세지를 주었다.
이들의 죄를 나열해보니 백성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기 보다 오히려 옳은 길을 떠나게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제사장들이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는 하나님을 전하고, 자신이 지키지도 않는 율법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르침안에 무슨 능력이 있고, 진심이 있겠는가. 마음이 없는 전달은 귀를 스쳐 나갈뿐 마음속까지 딜리버리 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율법을 그저 편파적으로 적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같은 적용법은 이시대 신자들에게도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카테고리인거 같다. 그저 귀에 듣기 좋으라고 말씀을 인용할뿐 그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지 내 눈에 보기좋고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씀만 선호하고 그렇지 못한 말씀은 외면하는 말씀 편식에는 아무런 능력이나 은혜도 임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말씀을 통째로 받아 먹어라고 하셨지 가려서 먹으라는 말씀을 하신적이 없으시지 않은가?
그러므로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사도행전의 베레아 성도들처럼 ‘그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실제로 순종하며 살아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은 절대로 우리 인생을 악한 길로 빠지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발에 등불이며 내 길에 빛이 되어 주셔서 넘어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심을 기억하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먼저 주의 말씀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일에 결단해 봄이 어떨까?
(12/31)
*하나님이 특사를 보내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3:3-4)
“그는 은을 정련하여 깨끗하게 하는 정련공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금속 정련공이 은과 금을 정련하듯이, 그가 그들을 깨끗하게 하면, 그 레위 자손이 나 주에게 올바른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구약시대이 마지막 예언자로 세움을 얻었으며 그의 사역또한 구약을 이어 신약시대의 빛을 밝히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선포였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자요 특사인 메시야가 오시면 유대인들의 죄악을 드러내시며 회개의 삶을 선포하시기 위함이였다.
유다 백성들의 죄악은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고서도 뻔뻔하게 발뺌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소산의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것은 사실상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었으나 그들은 자기의 것을 잃는것으로 생각했던거 같다.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풍성한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을 보장하셨다. 보물이 있는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말씀처럼 인생의 마음을 교만하고 탐욕스럽게 만드는것이 바로 물질이다.
하나님은 모든 물질의 주인이심을 깨닫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신이도 취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을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하여 겸손히 하나님의소유를 인정하는 자가 십일조에 시험들지 않을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법이다. 아브라함처럼 자신에게 있는 그 어떤 귀한것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릴수 있는 믿음위에 부족함없이 채워주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