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섞여 살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27-36)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그들을 몰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순종하지 못했는가? 두가지 이유를 들수있다. 첫째는, 그들이 강해보였기 때문이어서 이미 정복전쟁이 끝난상황에서 또다른 수고를 원치 않았을것이다. 둘째는 그들이 강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자신들의 부역을 위해 쓰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결국 이들의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계기가 되었고 남겨두고 타협한 가나안 민족들로 인하여 신본주의국가 이스라엘은 급격히 타락의 길을 걷게 되고 그들로 인하여 심각한 타격을 받게되는것이 사사기의 이야기이다.
사사기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사시기의 상황을 우리의 이야기로 이끌어낼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이시대에도 분명히 기억해야하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도록 이끄는 어떤것들과 타협하거나 손해를 두려워하여 남겨둔다면 그런것들이 반드시 우리 눈에 가시가 되어 하나님과의 영적단절을 몰고올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주인삼는분이 하나님이신지 확인해야 한다.
---해외선교-----
(8/20)
*삼손을 일반 사람처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6:17)
-태어나면서부터 한번도 삭도를 대지 않았던 머리에 삭도를 대는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삼손의 엄청난 힘의 비결과 원천이 머리카락에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것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헌신한 표식에 불과하다. (민수기6) 그렇다면 왜 삼손은 자신의 힘이 머리카락에 있다고 믿었을까? 그당시 나실인은 삼손밖에 없었고 나실인이 일반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점은 머리카락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혼자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 머리를 밀고나니 힘이 사라졌다. 이유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떠나실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자신의 모든 힘의 원천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제것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이렇게 외쳤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라고 했지 ‘내 머리카락을 빨리 자라게 해서’ 라고 말하지 않았다.
삼손이 가진 엄청난 괴력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어떠한 능력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자기힘만 믿고, 눈에 보이는것만 선호하는것은 참믿음이 될수없다.
모든 지혜와 능력이 내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에게서만 임하는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날마다 살아가야 한다.
(8/21)
*삼손이 하나님 앞에 마지막으로 간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16:28)
-자신을 기억하시고 마지막 힘을 주셔서 원수들과 함께 죽기를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사사로서의 사명을 실패한 삼손의 마지막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그렇다. 삼손의 간구가 응답되었고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힘을 사용해 다곤신전을 무너뜨리며 수많은 블레셋사람들을 죽일수 있었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언제나 징계하시고 심판하신다. 죄를 짓고 곧바로 회개하더라도 죄의 댓가는 지불하게 하신다. 그러나 징계를 당하더라도 진정으로 회개한자에게는 언제나 긍휼을 나타내신다. 다윗이 밧새바와의 범죄로 인하여 무서운 징계를 당했으나 다윗의 통회와 자복함을 통하여 다시 그와의 관계를 열어주셨다.
삼손이 하나님을 떠나자 곧바로 무서운 징계를 당했지만 그가 뒤늦게 깨달은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었다는것이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자랄때까지 기다린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능력을 다시한번 부어달라고 간구한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노중에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언제나 사모하고 구할수 있어야 한다.
(8/22)
*미가의 어머니는 돌려받은 돈으로 무엇을 하였습니까? (17:4)
-목상에 은을 입힌 우상을 만들어 집에 놓아 두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고 그곳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미가가 살았던 에브라임 지역은 법궤가 있었던 실로땅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태연하게 우상이 만들어지고 또 스스로 거짓 제사장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시대 죄악과 타락의 모습을 찾아볼수가 있다. 미가의 어머니의 신앙은 여호와 신앙처럼 보이고 말도 그렇게 하였지만 실상은 전혀 신본주의가 아닌 우상숭배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은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한다고 하지만 행동은 각자의 생각에 옳은대로, 즉 자기 하고 싶은데로 따라 살아가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과 가족의 신앙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비추어 어긋나지 않도록 늘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8/23)
*단 지파가 땅을 정탐하며 다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18:1-2)
-단 지파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분명히 땅을 분배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완전히 그 땅을 정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모리 족속이 강한탓도 있었지만 그들이 지레짐작 겁을 먹은 불신앙이 원인이었다. 가나안 정복 정착을 통해 단 지파는 12지파 가운데 가장 믿음이 없는 지파로 나타나게 된다. 달란트를 주셨지만 그것을 사용해 보지도 않고 묻혀두는것은 어리석은 종이 하는 일이다. 한 달란트면 어떤가 주인이 주신것이니 순종하고 뭔가를 시작했으면 단 지파도 그 땅을 차지하고 정착했을것이다. 주신것에 감사하고 주님께 순종하는자가 얻으리라.
(8/24)
*오늘 본문에서 레위 남자가 가까운 여부스 사람의 성읍이 아닌 기브아까지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19:11-12)
-레위 사람으로서 이방인의 지역에서 밤을 지낼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종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베냐민 지역인 기브아까지 들어간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엄청난 재앙을 불러 일으킬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기브아는 베냐민의 불량배들이 득실대는곳이었고 당연히 하나님을 떠난곳이었다. 만약 레위사람이 장인의 계속되는 요청을 미리 거절하고 일찍 장인의 집을 떠났었다면 아마 이와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육신의 쾌락과 정욕은 늘 우리의 신앙을 붙잡아 놓는다. 그리고 퇴보하도록 만든다는것이다. 레위사람이 지나치게 율법주의에 빠져있어서 여부스에서 밤을 지내자는 종의 말을 거부한것도 무서운 재앙을 맞게된 원인이기도 하다. 믿음을 갉아먹는 육체의 쾌락주의와 형식적인 율법주의를 이길수 있도록 늘 성령안에 깨어있어야 한다.
(8/25)
*이스라엘 자손이 기브아 사건에 대해 추궁하자 베냐민 지파는 어떻게 반응 했습니까? (20:13-14)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과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참으로 이해할수 없는 행동이다. 누가봐도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찾아서 죄값을 치르도록 했어야 맞았고 아울러 이후에 발생하게될 엄청난 비극적 분쟁도 사전에 막을수 있었을텐데 왜 베냐민지파는 믿기지 않는 엉뚱한 결정을 내린걸까? 그 이유는 기브아 불량배들의 수준이 베냐민 지파의 수준이었기때문이다. 그들의 잘못된 범죄를 추긍하기보다 오히려 옹호하려고 전쟁을 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지파가 베냐민 지파의 현모습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살면 무엇이 올바른 행동이며 결정인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심각한 장애를 받게되는것이다. 아무리 자녀가 귀중해도 나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면 내 자녀부터 회개시키고 징계를 주어야 하는것이 올바른 기독교 교육이다. 자녀가 우리의 우상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씀을 통해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그리고 날마다 구하고 찾아야 성경적인 선과 악을 구별할수 있다.
(8/26)
*이스라엘 사람들이 베냐민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20:35-36)
-이스라엘은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두번이나 지고도 포기하지않고 도전해서 세번만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숫자적 우세로 인하여 베냐민과의 전쟁을 쉽게 생각했었던 이스라엘연합군은 믿을수 없는 두번의 실패를 거듭했고 급기야 하나님께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기며 매어 달리게 된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그들의 힘과 숫자를 의지했을때 한 지파에게 패배하도록 두셨으나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에게 마치 가나안 정복 전쟁때의 ‘아이성’ 전쟁때와같은 방법으로 승리하도록 도우셨다.
성도의 영적인 전쟁도 혼자하는것이 아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지혜와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하심이 있어야 승리할수가 있다. 아무리 나 자신이 강하고 지혜로와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할때 어처구니없는 실패가 찾아오는것이다. 날마다 더 겸손하며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며 소망하는 믿음이 승리를 가져올수있다.
(8/27)
*베냐민 지파가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해낸 방법은 무엇인가? (21:19-22)
-베냐민 남자들이 실로의 처녀들을 강제로 붙들어가서 살도록 하는것이었다. 참 그 방법이란것이 보기에 아이러니하다. 베냐민 지파에게 자기들의 딸들을 주지 않기로 맹세할때는 언제고 이제와서는 베냐민 지파의 씨가 말라지는것을 우려해서 베냐민 지파를 보존하기위해서 아이디어를 낸다는것이 기상천외하다.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맹세가 그렇게 중요한것인가?
그렇다. 이스라엘에게 맹세는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것이므로 이것을 어길시 목숨도 불사하는 것이다.
또다시 즉흥적으로 하는 맹세나 서원이 얼마나 위험하고 대책이 없는것인지 잘 볼수가 있다.
과연 하나님은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 불쌍히 여겨 진심으로 하나님께 미스바 맹세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할수는 없었을까? 만약 그렇게 요청했을때 하나님은 반대하실까…
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만 행했던 사사시대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의 결말을 보여주는듯하다. 자기의 생각에만 맞게 행동할수는 있지만 그 행동의 결말까지 스스로 결정할순없다. 오직 하나님이 판단하셔서 선과 악을 구별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마음의 경영까지도 하나님께 맡길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