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
*주님은 무엇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까? (96:13)
-주님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너무 크시기 때문에 사람이 혼자 그를 찬송하기는 어렵다고 표현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구원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임하시므로 신자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함께 기뻐하며 찬양하기를 소망한다.
시인은 세가지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노래하는데 ‘즐거이 노래하자’, ‘새 노래로 노래하자’, 그리고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께 경배하자’ 이다. 세가지 다른 단어를 인용했으나 한가지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단어를 강조하기 위함인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바로 ‘전심’ 이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의 삶에는 즐겁고, 새롭고, 거룩함이 동반되는 것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찾는 자에게 주님은 찾아 오시며, 그의 상황과 형편을 지켜주시며, 당신의 의로서 세상을 심판하시며, 그리고 진실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다스려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악에서 떠나며 선을 따르는 자이어야 한다.
‘빛은 의인에게 비치며,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샘처럼 솟을 것이다. 의인들아, 주님을 기뻐하여라, 주의 거룩하신 이름에 감사를 드려라.’
한사람보다 두 사람의 연합이 더 강한법이다.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기 위하여 하나되고 연합하여 전심으로 부르짖을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력하시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리고 선포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이 먼저 온 마음으로 주님을 경배하자.
(6/15)
*땅 끝의 모든 사람까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98:3)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해 주셨기 때문이다. 시인은 주님의 오른손과 그 거룩하신 팔로 구원을 베푸셨음을 찬양한다. 오른손은 능력을 거룩한 팔은 신적인 방편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소유하신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구원해 내시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이 ‘자기를 위하여’ 베푸셨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뜻이다.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높이는 행위를 교만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때는 우리 인생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큰 축복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시때때로 주의 영광을 보기 원하며, 주의 영광의 빛을 밝히 비추어 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더욱 과감하게 자신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으면 좋겠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접경지역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폭포인 ‘이과수 폭포’ 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탄식과 환호성이 저절로 나옴을 경험했다. 그 환호성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자연을 통해 드러내셨음을 깨달음에서 터져 나왔다.
시편기자는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환호성을 울리면서, 그 앞으로 나아가라’ 고 노래한다. 이 새번역은 원래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 는 의미이다. 왜 온 땅이 하나님께 즐거운 찬송을 불러야 할까?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고 그의 백성이며 그의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수많은 방편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길 원하시는데 그중에 우리가 원해야 하는것은 바로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던 바울과 같이 모든 신자들의 삶도 오직 그분의 영광만이 드러나 저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길 원한다.
(6/16)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어디까지 미칩니까? (103:17)
-영원에서 영원까지 이른다. 시인 다윗은 주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자신의 영혼에게 말한다.
‘내 영혼아,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찬송하려라.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받는 자는 저절로 얻어지는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것에 절대로 비할바는 아닐지라도 진실하게 그리고 간절히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받을 것이다.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지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며 마음이 요동하지 않도록 하였다. 인생이 가진 마음이라는것이 워낙 자아에게 영향을 쉽게 받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의를 올바로 지키기 위해서 매 순간마다 자신의 영혼에게 말하고 또 이야기 해야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무궁무진하여 주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의지하는 자에게 무한대로 부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을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관찰하고 탐구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고, 창조주를 대면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6일동안 천지를 완벽하게 창조하신 주님이 마지막 날 인간을 주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의도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우리 인생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셨는지 감이 오지 않는가? 하나님은 모든 자연만물을 손수 먹이시고 입히시면서 이렇게 물으신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수백배 수천배 귀한 존재들이란다 이것들을 내가 매일 먹이는데 하물며 가장 사랑하는 너희를 내가 어떻게 하겠니?’
아름다운 계절에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자. 거룩하신 주님이 거룩하게 만드신 자신을 바라보자.
그리고 노래하자.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며 베푸신 주님의 모든 은혜와 사랑을 잊지 말자’
날마다 주님을 잊지 않는 자를 하나님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지혜와 능력을 부으시리라.
(6/17)
*이스라엘 백성이 잊어버린 것은 무엇입니까? (106:21)
-이집트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어 버렸다. 시인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는것이 그의 백성된 자들의 특권이요 도리임을 밝힌다.
그렇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섬길때 하나님은 언약하신것을 기억하시되 수천대에 이루어지도록 기억하신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기억장치를 항상 가동할때 신자들의 삶에서 감사와 기쁨이 흐르게 된다. 하지만 왜 이다지 우리의 기억력은 망각을 일삼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제받은 은혜도 잊어버리고 오늘 시퍼렇게 날이 선채 살아갈때가 많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았음에도 백데나리온 빚을 진 친구의 멱살을 쥘수 있다는건 도대체 어떤 기억만 저장하고 사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도 그 빚진 종의 망각 시스템을 책망하면서 무서운 벌을 내린것이다.
하나님도 우리가 받은 은혜를 망각하는것을 그냥 바라보지 않으신다. 그것을 일깨워 주시는데 간혹 충격요법을 쓰셔서 망각시스템을 단번에 수리해 주시기도 하신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는동안 그 기적과 승리의 은혜들을 홀라당 까먹고 계속 원망과 비난을 쏟아 내었고 결국은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 버렸는데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대처할 지경에 이르자 그들을 찌를 가시를 준비하셔서 과거를 회상케 하셨다.
어떤이는 더욱 하나님을 원망하며 비참한 결과를 맞았으나 어떤이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우리의 망각 시스템은 회개의 눈물이 기름이 될때 수리되어 잊었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기억하게 되어 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를 잊지 않으시는 주님을 떠올리며 주님을 의지하길 소망한다.
(6/18)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108:1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승리를 얻을 것이요 그분이 우리의 원수들을 짓밟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의 수준과 질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정했다고 노래한다. 그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늘보다 더 높은 진실하심이 온 땅에 넘치시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사람의 어떤 도움도 소용이 없고 헛되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면, 수천, 수만이 몰려올지라도 손 쉽게 감당하게 하신다. 107편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고 노래한다.
선 감사, 후 응답은 기도의 공식이다. 그래서 주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것을 이미 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실것을 믿고 감사부터 올릴 수 있는것이 성숙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은 영적으로 무적이 된다. 그런 믿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으로 어디에 거하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 요동하지 않는다. 뒤 돌아 보지 않는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같은 임마누엘의 신앙이 결여될때 아이성같은 보잘것 없어 보이는 전쟁에서도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능자의 그늘에 머물며 그분의 손을 놓치 않도록 마음과 생각을 성령님께 맡겨 드림이 옳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확실히 정하여 오직 한 길로 나아가자.
(6/19)
*시인이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9:30-31)
-자신을 고발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해 주시려고 주님께서는 오른쪽에 서 계시기 때문이다.
사랑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배은망덕한 자이며 은인의 심장을 찌르는 자이다. 가룟유다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호산나, 호산나, 영접하다가, 어느 순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무리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해 주셨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성도된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야말로 원수를 이기는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이다. 다윗도 하나님께 나아옴으로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서 원수로부터 받은 것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방편이기 때문에 믿는 자가 기도하는 것은 진실로 힘이 된다. 하나님은 기도자의 오른편에 서 계시면서 기도자를 도우신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수가 있다. 인간 관계를 회복할 수 있고,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으며, 부족함을 채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서 원수에게 하고싶은 말과 심정을 하나님께 모두 토해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소 과격한 표현이 눈에 띄는거 같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것저것 가릴 필요가 없다.
모두 토해낼 수 있는 자가 더 많은 도움을 얻을 수가 있다. 주님 앞에서 체면따위 차릴 생각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미사어구보다는 진실한 우리의 마음을 듣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6/20)
*지혜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111:10)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성경 곳곳에서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로운 삶을 엿볼수 있는데 그들의 지혜의 배경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진행됨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행하심이 옳고 선하시며 분명하심을 온전히 믿는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기 마련이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참으로 훌륭하시니, 그 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두 깊이 연구하는구나, 주님이 하신 일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우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다’
아멘, 아멘, 아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영원토록 흔들리는 법이 없으며 항상 곧으시다. 송명희 시인이 힘들고 어려운 장애를 가진 삶 속에서도 ‘공평하신 하나님’ 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좋으시고 옳은 일만 행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남이 못본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네 나 남이 모르는것 깨달았네’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하다. 누구든지 그 지혜를 얻기를 원한다면 받을수가 있다. 돈 드는 일 아니다. 온 마음을 열어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토대로 삶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한다면, 누구나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수가 있을 것이다.
세상의 지식으로만 사는것은 반쪽자리 삶이다. 온전한 삶은 세상의 지식이 근접할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로만 살아 가는 것이다. 오늘도 경건히 주님을 사랑하며 의지하길 소망한다.
(6/21)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118:8)
-주님께 몸을 피하는 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주님을 의지하고 피하는 것이 강하고 능력있고 높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시편 기자가 이렇게 완강히 주님을 의지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의 편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편을 가르는 행동은 자칫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 있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영적인 삶은 다르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하나님편에 서지 못하면 마귀의 편에 자동적으로 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철저하게 편을 갈라야 하며 무조건 하나님이 나의 편이심을 세상에나 마귀에게나 보여주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편에 있을때 겪었던 일화를 기억한다.
‘뭇 나라가 자신을 겹겹이 에워쌌지만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 그들을 물리쳤다. 그들이 불처럼 자신을 삼키려고 했고 밀어서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그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물리쳤다.’
왜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주님을 의지하고 피하는게 나은가? 그것은 하나님이 보유하고 계시는 스케일때문이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에게는 풀지 못할,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넓고 충만하신 지혜로 당신의 편에 서있는 자들을 도우신다.
118편은 다윗의 시이다. 그가 원수의 모든 공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즉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쫒기는 자에서 나라의 왕으로 세워주셨음을 노래하였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확인해 볼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편이 맞는가이다.
세상의 인싸가 되기보다 하나님의 인싸가 되기를 소망하라.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게 그를 보호하시리라!
*시편119 스페셜
드디어 시편119편을 맞이한다. 한장이 무려 176구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장이 가장 긴 성경이다. 답관체(acrostic) 형식으로 8절씩 나누어 22개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영어성경에는 자세하게 8개 구절씩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구분되어져 있는데 8개 절들의 첫 단어들이 같은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기록한 이유는 한 가지 주제의 연결성과 긴밀성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시편 119편은 거의 모든 구절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단어들이 포함되어있다는것을 볼수가 있다. (율법, 말씀, 증거, 도,법도, 율례,교훈…) 그래서 학자들은 시편119편을 시편의 중심이며 성경의 중심이라고도 표현할 정도이다. 실제로 신구약 성경책에서 가장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숫자도 공교롭게 119 혹은 911 이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삶이 다급하고 문제에 막혀 있을때 가장 빨리 펼쳐볼수 있는곳이 119편이요 하나님의 말씀임을 암시하고 있다. 시편의 작가가 누구인지는 애석하게도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 다윗 혹은 에스라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다윗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듯 하다.
아무튼 119편은 두고 두고 평생에 읽고 묵상하고 암송해야 할 말씀임에 틀림이 없으며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구절 마다 정확한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에 밑줄을 좍좍 그으면서 말씀을 맛있게 먹을수 있기를…
(6/22)
*젊은이가 인생을 깨끗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늘 명령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겸하여 은혜와 생명을 주신다. 시인은 자신의 길이 흔들리지 않고 탄탄하게 살아갈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성실히 지키도록 도움을 구하고 있는데 그렇게 구하는 이유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키는 삶이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복된 시간이 됨을 경험하고 알리는 사람이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사는 자는 갈렙과 같이 평생을 젊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할뿐만 아니라 새 소망과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도전하게 만들고 창조적인 마인드를 심어 주신다.
이번 기회에 119편을 자세히 정독하면서 삶의 변화와 개혁이 용솟음 치듯 터져 나오길 소망한다.
(6/23)
*만물이 오늘까지도 주님의 규례대로 흔들림없이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9:91)
-만물이 모두 주님의 종들이기에 주님이 정해주신 규례대로 서 있을 수 있다. 사시사철 변화무쌍한 대자연이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 메뉴얼을 준수하고 있는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새벽부터 지저되는 새들의 지저귐이 왠지 하나님의 창조 규례들을 읊조리는듯이 들린다. 어쩜 그리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이 울어대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지만 그것이 창조주의 법을 따르는것이라 생각이 드니 왠지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자연은 본능적으로 창조주가 정해주신 순리대로 살아가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세상적인 선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연처럼 따르고 준수한다면 우리 인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6:26)
지금보다는 염려와 근심이 줄어들고 오히려 감사와 찬양이 넘쳐나게 될것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앞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인의 이 고백을 통해 그가 경험한 말씀의 삶이 얼마나 귀하고 유익인지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기쁘게 순종하며 지킬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삶은 어떨까? 간단하다. 모든 자연이 하나님의 창조 메뉴얼을 사람처럼 불순종하며 자기 멋대로 산다면 세상은 어찌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창조주 하나님이 자연들이 스스로 선을 넘지 못하도록 경계를 만드시고 규례를 정해주심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들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귀기울이여야 한다. 주의 말씀의 내 발에 등불이며 내 삶에 빛이 되신다. 오늘도 말씀하시는 음성에 마음의 귀를 열고 집중하여 그 말씀이 어두운 우리의 심령을 밝혀 주시길 소망한다.
(6/24)
*주님이 세우신 증거는 어떠합니까? (119:138)
-의로우시며, 참으로 진실하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이유와 증거들을 노래하였는데 그중에 눈에 띄는 구절들이 있다. ‘주님의 말씀을 열면, 거기에서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도 깨닫게 합니다.’
그렇다. 말씀을 진심으로 사모하고 묵상하는 자는 주의 말씀이 얼마나 우리를 지혜로운 길로 인도하시는지 경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능력이 너무나 놀라워서 지키지 않을 수가 없다고 고백하였다.
‘재난과 고통이 내게 닥쳐도 주님의 계명은 내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갈망하는 자는 말씀이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한 오아시스같은 기쁨을 주신다는것을 어떤 형편에서도 누릴 수 있다. ‘주님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평안이 깃들고, 그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습니다.’
왜 이와같은 놀라운 일이 말씀을 믿고 지키는 자에게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만이 나의 가는 길을 모두 아시기 때문이다. 말씀 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형편과 처지, 과거, 현재, 미래를 통찰하시는 전능자이시므로 누구든지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자는 등불을 들고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처럼 넘어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나는 길을 잃은 양처럼 방황하고 있으니 오셔서 자신을 찾아 달라’ 고 호소하며 자신은 말씀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왜 그는 말씀을 잊은적이 없이 지키는데도 자신은 길을 잃은 양처럼 방황한다고 말하는가? 그는 자신을 죄인으로 간주하며 말씀의 인도함이 없이는 온전한 길을 찾을 수가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늘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 많이 안다고 교만하는것은 패망의 선봉이 된다.
(6/25)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는 자를 주님은 어떻게 지키십니까? (121:1-4)
-주를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낮의 해와 밤의 달도 그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신다. 이뿐만 아니라 시인은 하나님께서 너희의 출입을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것을 노래하였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누리는 자는 이세상에서 누리는 그 어떤 시설보다 안전하고 편안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마치 산과 같이 요동치 않으며 사람과 세상의일로 인하여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솔로몬은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다고 노래한다. 제 아무리 노련한 파수꾼이라 할지라도 모든것을 한눈에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약점이 있지만 하나님은 온 우주를 불꽃같은 눈으로 꽤뚫어 보시는 분이시므로 우리 인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살피시는 능력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파수를 맡기는 자는 편히 눕고 잘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데 잠이 축복이 아니라 잠을 자는 사이, 즉 우리 인생이 아무것도 할 수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셔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영혼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것이 축복이다.
믿는 자는 항상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 주님께서 나의 삶을 파수하심을 믿는다면 안전함을 누리고 심령에 평안을 얻자.
(6/26)
*주님께서 시온 산에서 약속하신 복은 무엇입니까? (133:3)
-영생의 복이다. 헤르몬 산은 팔레스틴 북부에 있는 높은 산이다. 그 꼭대기에 있는 눈이 증발하여 올라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유다에 이슬을 제공해 준다. 유다에 내리는 이슬이 중요한 이유는 건조한 유다땅에 있는 식물들을 자라게 하는 이슬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있는 유다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한다면 이슬은 그의 백성들을 먹이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라는 찬송가 처럼 은혜는 높은곳, 위에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영생은 인간이 만들어 줄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내려주시는 위로부터 임하는 신비한 은혜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은 자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시시때때로 그 은혜와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시온산에 헤르몬 산에서 온 이슬이 필요하듯이 신자들의 삶에 하나님의 이슬이 뿌려져야 살아갈 수가 있다.
시편기자는 그래서 주님을 기다린다고 노래한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림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 고 반복한다. 그 이유는 속량하시는 큰 능력이 주님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오직 주님만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에서 속량하심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에 종일토록 주님만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파수꾼처럼 힘들고 고달플때도 있지만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의 소망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계시기에 힘든 세상에서도 기뻐하며 소망가운데 살아 갈수 있음을 잊지 말자.
(6/27)
*다윗이 주님께 감사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9:14)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다윗은 주님이 늘 자신과 가까이 계심을 경험하고 감사하는 노래를 끊임없이 올려 드렸다. 다윗이 놀랍게 경험한 늘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은 어떤 것일까?
어디서나 다윗의 삶을 샅샅이 살펴보셨으며 멀리서도 그의 행동과 생각까지 알고 계셨다. 다윗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 특히 다윗이 감동받은것은 주님께서 자신을 두루 감싸 주시고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다는 것이다.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깨닫게 하심으로 해석하였는데 그 깨달음이 너무 놀랍고 높아서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윗이 경험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와 임재는 현재 진행형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믿는 자들의 삶속에 가까이 거하실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솔루션을 주신다. 다윗은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 심오하고 많은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다고 하였다. 그러나 깨어나 보면 자신은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세상 인구가 한꺼번에 구하여도 다 들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한사람, 한 영혼을 살뜰하게 챙기시고 아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늘 동행하길 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낱낱히 아뢰고 호소하는 삶을 가질수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하고 찾는 자를 도우시며 당신의 지혜를 얹어 주셔서
살아갈 길을 찾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곳이 없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며 특히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를 절대로 홀로 두시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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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과 정직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140:13)
-의인은 주님의 이름에 찬양을 돌리고, 정직한 사람은 주님 앞에서 살 것이다.
시편140-143은 다윗이 다양한 상황에서 드린 기도에 대한 말씀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 그리고 구원에 대하여 간구하고 있다. 원수들의 공격과 도전이 끊이지 않았던 다윗의 험난한 삶에서 그가 피난처로 삼은 것은 역시나 기도골방이었다.
때로는 소리높여 부르짖고, 때로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때로는 소리없이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했던 다윗이었다.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좋아하실까? 하나님은 이와같은 다윗의 기도 전부를 기뻐받으셨다. 왜냐하면 다윗이 어떻게 기도를 하든지 모든 기도가 그의 중심에서부터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고, 내가 피할 곳이 없고, 나를 지켜 줄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내가 받은 분깃은 주님뿐입니다.’
그의 간구를 보라. 다윗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의지하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의지하지 않았으며 제일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모두 털어 놓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잘 알고 들으시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문제에 대한 해결을 얻지 못해서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으나 인간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그때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애원하며 부르짖었다. 자신의 잘못과 불신앙이 있었는지 돌아보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다. 아침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였다.
신자에게 기도는 숨을 쉬는 통로이기 때문에 범사에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신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혼자가 아님을 금방 느낄수가 있고 모든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외롭지도 않으며 두려움없이 지혜롭게 살아 갈수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헤매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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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어떤 백성이 복을 받은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44:15)
-주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이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평생의 주인으로 삼고 지냈을때 경험했던 삶들을 노래한다. 왕으로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의지하자, 하나님이 적들을 다윗의 군대앞에 무릎꿇게 하셨고 그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셨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은 나라는 거리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없고 가축들이 살찌고 곡식의 수확이 풍성해진다.
다윗이 한 사람의 신자로서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게 되었을때 다윗이 살았던 삶의 패턴은 새 노래로 열줄 비파로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베짱이처럼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과 연주를 즐긴것이 아니라 그가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였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선하시고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떤 형편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찾는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은 전 인격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므로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모습이 발견 되어야 한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과같이 주신것에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은 자는 세상의 권력이나 권세를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소망을 두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범사에 나의 관점, 세상의 견해가 아닌 제일 먼저 하나님의 standpoint(견해) 이신 말씀을 알고 깨달아 순종하는 자이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자는 복 받는 자 일수 밖에 없다. 말씀없인 밥도 없다는 각오로 살수 있다면 그 인생은 더 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인생을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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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147:11)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한결 같은 주님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시편을 두달동안 한절 한절 줄을 그으며 읽어보았다. 시인의 이름이 기록된 시편이 100개이고 50개는 익명(Anonym) 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다윗(73), 아삽(12), 고라자손(10), 솔로몬(2), 모세(1), 에단(1), 헤르만(1). 이렇게 일곱 사람과 이름을 알수 없는 사람까지 이 시인들이 저마다 다양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 기록한 시편들이 독자들에게 깊은 깨달음과 놀라운 은혜를 주는것을 보았다.
시편은 읽고 또 읽을수록 독자들에게 영감과 통찰력 그리고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줄것이다. 그러므로 평생 읽을 수 있기를 권유한다. 시인들이 급박한 위기와 슬픔, 그리고 하나님이 부으신 축복가운데 어떻게 노래하고 기도하였는지를 배울수가 있다.
시편의 마지막 구절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Let everything that has breath priae the Lord.” 이다. 호흡은 우리 인생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자원이며 하나님이 주시고 공급하신다. 가장 기본적인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올려드릴 수 있다면 이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불평보다는 감사의 찬양이 흘러 나올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편은 계속 되어져야 한다. 우리의 입술로 찬양하고 마음으로 찬양하고 무엇보다 삶을 통해 주님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찬양은 멜로디 있는 기도라고 하지 않았는가.
애절하게 그리고 간절히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올려 드림이 합당하다. 어떤 상황속에서 먼저 하나님을 찾고 노래하는 자가 하나님을 한결같이 경외하는 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신자는 하루 이틀 신앙생활하고 끝날 사람이 아닐것이다. 평생을 믿음으로 살기 원하고 믿음으로 천국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내 말에 동의한다면, 시편을 살아야 한다. 날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것! 그것만이 복된 신앙의 삶이다.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