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
*예레미야가 슬퍼하며 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아,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 예전에는 뭇 나라 가운데 으뜸이더니 이제는 과부의 신세가 되고, 예전에는 모든 나라 가운데 여왕이더니 이제는 종의 신세가 되었구나.”
하나님의 계속되는 경고를 결국 완전히 거절했던 남유다에 멸망의 심판이 찾아왔다. 북이스라엘에 이어 남유다까지 멸망하며 하나님의 나라들이 쓰러지고 무너졌다. 그렇게 탄식하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했지만 결국 무너진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제 허무함과 탄식으로 절규하고 있다.
한때 Holy City 였던 예루살렘이 Sin City 가되어 하나님의 분노로 인하여 무서운 징계를 받았다.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성은 무너지고 성전은 불타버렸다. 원수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들이 머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과거의 찬란한 영광안에 스스로 갇혀있었던 유다 백성들은 ‘설마, 설마’ 하면서 멸망의 날이 오게될것을 부인하며 살았던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지… 예레미야 애가는 이렇게 무너지고 빼앗긴 나라를 바라보며 마지막 으로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하는 그의 슬픈 노래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by이상화) 를 기독교적으로 답을 한다면 ‘그렇다’ 이다. 빼앗긴것이 그들의 죄로 인함임을 깨닫고 진실한 회개의 삶을 살아간다면, 따스한 성령의 빛이 다시 찾아온다.
이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며 돌아갑시다! 주님이 당신의 눈물을 닦아 주실것입니다.
(10/16)
*예레미야가 고통 가운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21-22)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애가는 구구절절 탄식과 애통함이 묻어 나오는 성경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했던 그대로 되기를 원치 않았음에도 하나님의 진노의 예언이 눈 앞에서 성취되는 모습에 아연실색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유다땅이 파멸되지 않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바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 하나 선포했던 그대로 심판의 예언이 이루어짐을 눈을 뜨고 차마 볼수 없어서 그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다.
‘애가’는 분명히 ‘슬픈노래’ 인데 마냥 슬퍼할수 만은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한결같으시다는 것을 예레미야가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절망가운데 소망을 가질수 있는 사람이 신자이다. 다들 포기할때 희망의 끈을 붙잡는 사람이 성도들이어야 한다. 왜 신자들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때문이다. 천지가 무너지고 없어져도 믿는자의 생명을 생명싸게에 넣어 지키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포기할수 없고 절망할수 없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아멘, 아멘, 또 아멘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때 어떤 환경에서도 인내할 수 있고, 오히려 고난 가운데 능력을 베푸실 주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무너진 도시에서 삶의 소망을 잃은 백성들에게 호소한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자.”
그렇다. 우리가 비록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맞았더라도 다시 소망을 품고 일어나야 한다. 주께 돌아오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며, 슬픔이 변하여 노래가 되며, 탄식이 변하여 춤이 되도록 하신다.
(10/17)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5:16-17)
“우리의 마음에서 즐거움이 사라지고, 춤이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으니, 슬프게도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의 가슴이 아프고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아, 슬프다! 매 장마다 예레미야의 탄식이 쏟아진다. 예레미야는 그의 애가의 마지막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게 된 이유와 어떻게 하면 애가가 변하여 희락의 노래가 될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목격한 예루살렘성의 모습은 비극이라는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바벨론이 성을 포위하고 먹을 것이 다 떨어지자 인육을 먹기 시작하는 백성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곳은 지옥을 방불케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좀더 부지하겠다는 인간의 최악의 이기심을 보았다.
예레미야는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극노하시고 불타는 분노를 그곳에 쏟아 부으셨다고 표현하였다 . 그리고 이 성이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된 원인에 대하여 말한다.
“이것은 예언자들이 죄를 짓고 제사장들이 악한 일을 하여서, 성 안에서 의로운 사람들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 시대를 봐도 영적인 지도자들의 타락은 그 도시, 그 나라의 타락을 부추기게 된다.
이시대에도 교회의 타락의 맨 앞에는 목회자, 사역자들의 탐욕스런 욕구가 신앙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있다. 영적이고 의로운 사람들은 오히려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매장되어 버린다.
예레미야의 애가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한 간구로 끝이난다.
“주님,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십시요.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셔서, 옛날과 같게 하여 주십시요.”
이 기도는 팬데믹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이시대 그리스도인들의 간구의 부르짖음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회개와 탄식이 없이는 주님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더 늦기전에 더 비참해지기전에,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눈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