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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Pastor Hyungill Kim

나먼저 그리고 너먼저


어린 시절 학교 다닐때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매일 시험치고 싫어하는 과목은 시험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학교에서는 나의 심정과 상관없이 시험 기간이 되면 매일 전 과목의 시험을 치르면서 나에게 고난의 시간(?)을 가지게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배우는 모든 과목에 대해 시험을 치는 이유는 배운 모든 과목에서 골고루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시험이라는것은 비록 우리의 삶에 고통을 더하기도 하지만 잘 이겨 낼때는 인생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좋은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시험들을 통과하는것을 볼 수가 있는데 어떤이는 잘 나가다가 시험에 걸려 실패하고 어떤이는 어떤 시험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잘 통과해서 신앙의 본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시험은 믿음과 아주 큰 관련이 있다. 성경에서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고 부르는데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기에 축약시켜 놓았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아브라함을 일컬어 ‘믿음의 조상’ 이라고 한다. 이말은 어려운 시험을 잘 이겨낸 증거가 그에게 있다는 말이 아닌가. 아브라함 만큼 삶 가운데 시험이 많았던 사람도 많지 않을것이다. 그중에서 자신의 조카였던 롯과의 문제에서 발생한 시험을 나누고 싶다.


자신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들이 날맏 다투는것을 보고 아브라함은 결정을 내려야 할때가 온것으로 깨달았고 조카였지만 롯에게 정중하게 분립을 제안한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조카에게 먼저 머물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의 말을 보니 ‘나먼저’ 의 사람이 ‘너먼저’ 의 사람으로 변화된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잠시 머물때 그곳 사람들이 두려워서 아내를 누이동생으로 불렀었다. 아내야 어찌됐든 나먼저 살고 보자라는 식의 발상이었다. 자칫 아내를 완전히 빼앗길 뻔 하다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다시 아내를 찾고 아브라함은 다시 순종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일어난 사건이 롯과의 분립사건이다.


믿는자가 따르고 가야할 길은 ‘나먼저’의 길도 있고 ‘너먼저’ 의 길도 있다. ‘나먼저’ 를 택해야 하는 길은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 길로서 그곳에는 먼저 당하는 희생과 땀의 수고를 필요로 하는 길이다. 두번째로 ‘너먼저’ 를 택해야 하는길은 무엇일까? 풍요로움과 안식과 쉼이 있는 길이다. 바로 아브라함이 롯에게 양보했던 길이다.


롯이 눈을 들어 소돔성이 있는 요단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표현했다. ‘여호와의 동산같고~’

만약에 아브라함이 이번 시험에서 ‘나먼저’ 를 택했다면 가족끼리 피를 보았을지 모른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나먼저’ 를 택한 이유로 서로 싸우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분쟁이 교회 안에 끓고 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먼저’ 해야할때 ‘너먼저’ 를 주장하고, 반대로 ‘너먼저’ 해야할때 ‘나먼저’ 를 선택하려고 하기때문이다.


누가봐도 삼촌 아브라함이 ‘나먼저’ 를 선택해도 아무도 의의를 제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이의 생각을 깨고 그는 ‘너먼저’ 를 택하였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이 모습이 그리스도가 가신 십자가의 길이다. 그분은 ‘나먼저’ 십자가 지셨다. 외롭고 힘든 길이었지만 홀로 걸어가셨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좋은 땅을 선택할 기회를 주자 롯은 낼름 그곳을 차지하고 ‘나먼저’의 길을 가버렸다. 아들처럼 여겼던 조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자 아브라함은 얼마나 허무함을 느꼈을까? 하지만 ‘너먼저’ 를 충실히 수행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오직 너먼저’ 라는선물을 들고 오셨는데 바로 그것은 롯이 택한것과 비교할수 없는축복이었다.


‘너는 눈을 들어 너있는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자손에게 주리니’


이런 글을 읽은적이 있다. ‘내 손이 편안하면 누군가의 손이 힘들것이고 내 손이 힘들면 누군가의 손이 쉼을 얻을 것이다.’ 너무 마음에 감동을 주는 글이긴 하지만 행동으로 연결되기까지가 꽤나 시간이 걸릴거 같다. 하지만 세상의 편견을 깨어 버리고 아브라함처럼 나부터 양보하고 섬김을 시작할때 그곳에 다툼대신에 평안과 기쁨의 나눔이 있을 것이다.


“너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것을 주시리 주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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